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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롭게
Oct 13. 2022
솔가비
솔가비가 쌓이는 만큼 추억도 쌓여
가을 햇살 가득받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거의 다다를쯤 내리막길에서 휜히 보이는 회색 슬라브지붕의 마당있는집. 집에 다왔다는 안도감일까? 내리막에선 브레이크가 없다. 내 키만한 가방을 메고 달린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날따라 집으로 같이 걷던 가을햇살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나보다.
뒷마당 언덕배기엔 도끼로 장작패기 바쁘신 아버지. 한겨울 구들장 따따하게 데워줄 장작은 가을부터 준비하셨다. 햇살 좋은날이면 장작들도 도끼질 한방에 쩍쩍 갈라지니 파편 튈까싶어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신 아버지셨다.
멀리서 빼꼼히 바라보던
나에게도 미션이 주어졌다. 깍쟁이는 어깨메고 삼태기 질질 끌며 솔가비 세 삼태기 해오라신다. 어린맘에 세 삼태기가 앞산 높이처럼 느껴졌다. 과연 내가 잘 해낼것인가! 그나마 시키면 시키는대로 말 잘듣던 난 쫄래쫄래 뒷산 언덕으로 올랐다.
소나무들은 겨울을 준비하는듯 한여름 푸르렀던 솔가비를 최소한으로 남기고 떨군다. 이때 갈색의 햇솔가비들은 아궁이속 군불의 불소시개가 되어준다.
저녁 아궁이 불짚힐때 딱이다.
바삭바삭 잘 마른 햇 솔가비들은 그 모습자체가 통통하게 살이 올라 보인다.
나무 사이사이로 융단깔듯 깔려있던 햇 솔갈비들이 레드카펫 저리가라다. 누리끼리한 옐로우 카펫이 펼쳐진듯한 곳으로 한발 내딛고 적당한 자리로부터 깍쟁이질을 한다. 슥슥슥 슥슥슥 아버지 어깨너머로 어렴풋이 보았던 모습을 쫓아 두팔이 바쁘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햇 솔가비들은 깍쟁이질 몇번에 금방 한 삼태기 담아졌다. 어린 내가 감당할수 있을만큼만 담아 아궁이가 있는 부엌으로 향한다. 부엌한켠에 쌓인 장작 옆에 쏟아붓고 다시 뒤산에 올랐다.
깍쟁이는 한 솔가비라도 흘릴세라 열일한다. 나보다 큰 깍쟁이로 쓸어담는 깍쟁이질이 정말 깍쟁이처럼 보였다. 누리끼리하던 옐로우 카펫은 깍쟁이질로 모기에 물려 가려워 긁던 허벅지처럼 자국을 남기고 난 계속 뒷걸음질 치며 집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세 삼태기가 마무될쯤 이번엔 기다란 장대를 들고 또 가을을 만나러 감나무 아래 서성이는 나였다.
오늘 집근처 산책길에서 만난 통통하게 살이오른듯한 햇 솔가비가 나를 그때 그시간속으로 보내주었으니 추억이 방울방울 햇살속에서 빛나고 있는 오늘이였다.
아궁이에 불붙이면 잘 탈거같은 햇 솔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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