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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Oct 24. 2021

좋은 일은 한 번에 쏟아진다.

고구마들이 넝쿨째 굴러오다.

집 근처 야채트럭 아저씨가 오는 날. 우연히 아저씨네 귤을 먹어본 후론 가끔 아저씨 트럭에서 과일을 사곤 한다. 좀 더 저렴하면서 맛도 좋았기에 다른 과일 살게 있을까 싶어 기웃거리다 고구마와 눈이 마주쳤다. 진한 자줏빛 뽀얀 고구마는 '나를 먹으면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나를 데려가~'하는 색과 크기로 날 잠시 갈등하게 했다.  

원하는 귤은 다 팔리고 없다고 하신다. 고구마를 살까 말까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박스로만 판다는 이 고구마를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며 난생처음 고구마를 박스로 샀다. 순간 고구마에 홀릭된 기분이었다. 3킬로도 5킬로도 아닌 10킬로 고구마를 한 박스씩이나 사고 잘한 건지 아닌지 얼떨떨해하며 집으로 왔다. 맘에 드는 고구마를 몇 개 씻어 에어 프라이기에 돌리면 군고구마가 된다. 이 맛에 고구마를 최근 주식처럼 먹고 있었던 나이기에 다 못 먹음 나눠먹음 되지~ 하는 마음도 섞여 있었다.


첫아이가 전화가 왔다. 작은 도서관 대면 수업 마친 아이는 자기 손에 고구마가 있다고 한다. 자원봉사하는 다른 분께서 챙겨 주셨다며 무겁다며 응석을 부린다. 바로 마을학교 댄스 수업을 가야 하기에 수업 후 무거우니 마중을 나오라고 한다. 흔쾌히 그러겠노라며 고구마 박스를 나도 모르게 쳐다보았다. 수업 마칠 무렵 주섬주섬 집을 나선다. 아이를 만나 건네받은 고구마는 자이언트급으로 크다. 시골에서 직접 수확해온 고구마가 맛나 보였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 문고리에 검은 봉지가 걸려있다. 뭔가 하는 마음에 들여다보니 이 또한 자이언트급 고구마가 살포시 들어있다.

맛있을 때 나눠 먹어야 제맛이 아니던가! 그냥 단지 고구마가 먹고 싶었을 뿐인데 내 마음을 아는지 고구마들이 밀려왔다. 주변 지인들과 맛있게 나눠먹는 즐거움을 가지란 뜻인가 보다.


어릴 적 고구마가 무척 먹고 싶던 시절이 생각난다. 고구마가 왜 그리 귀했던지. 어린 맘에 달달하고 폭신한 먹을수록 턱턱 막혀 가슴 치며 먹는 고구마가 먹고 싶었다. 시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께 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이듬해 고구마 줄기를 얻어다 심으셨다. 고구마 밭에 고구마 이파리 들을 보며 내심 고구마 캐는 날만 기다렸다. 고구마 이파리는 밭 가득 풍성히 넝쿨을 뻗어갔고, 드디어 수확하게 된 그날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 실망했다. 가슴 치며 먹고 싶던 밤고구마가 아닌 물컹물컹 밋밋한 맛의 물고구마였으니, 이런 고구마를 원한 게 아닌데 하며 실망했던 그 물고구마가 생각난다. 지금은 품종 개랑이 잘되어 맛없는 고구마가 없는 듯하다. 대부분 달달한 맛은 기본으로 가슴 치며 먹지 않아도 되는 고구마들이 언제든 구할 수 있지 않은가. 그땐 왜 그리 먹을 것도 귀했는지 그 시절 그러했던 마음의 근력들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듯하다. 항상 감사하며 나누며 살자고 말이다.


당분간 고구마가 밥상을 점령할듯하다. 밥에도 넣어먹어야겠고, 군고구마, 고구마 야채튀김, 고구마 맛탕 등등 고구마를 할 수 있는 간식들을 찾아봐야겠다. 수확의 계절처럼 풍성한 가을맞이를 오늘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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