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고 향기롭게 Aug 30. 2021

옥수수 알맹이에 담긴 추억들...

옥수수 사요~옥수수 사요~


"옥수수 사요~ 옥수수 사요~"
할머니 뒤를 쫄래쫄래 뒤따른다. 옥수수 파시는 할머니 뒤에서 난 그저 뒤따라 다니는 거 외엔 할 게 없다. 내 머리 위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듯한 다라에 뜨거운 김을 내뿜는 삶은 옥수수가 담겨 있다.
흰머리에 곱게 비녀를 하신 할버니께선 나보다 더 큰 다라에 더 무거운 삶은 옥수수가 머리 위에 얹혀있다. 할머니께선 옥수수 사요~ 옥수수 사요~ 골목길을 헤매신다.

할머니를 놓칠세라 뒤를 따른다. 감나무가 앞마당에 있던 여느 집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할머니의 옥수수 사요~소리에 옥수수를 사러 나오신 거다. 김장비닐 안에 옥수수는 조금 큰 건 2개, 조금 작은 건 3개씩 이미 삶기 전 묶여 있었다. 손으로 선뜻 잡기도 뜨거운 김장비닐은 옥수수의 뜨거운 김을 놓칠세라 꽉 잡고 있는 듯했다.

시작이 좋다. 또다시 옥수수를 머리에 얹고 걸음을 돌리신다. 옥수수 사요~ 옥수수 사요~ 할머니와 골목길을 몇 바퀴를 돌다 보니 나를 불러 세우신다. 내 머리 위에 있던 옥수수를 할머니 다라로 옮기신다. 그사이 옥수수가 제법 팔렸다. 다 비워진 내 빈다라를 내 손에 쥐어주곤 50원을 손에 건네주신다. 먼저 집으로 가라 신다. 할머니께선 마주 팔고 갈 테니, 넌 먼저 집에 가라셨다. 할머니와 그렇게 헤어졌다. 슈퍼에 들려 50원짜리 딸기맛 쭈쭈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 가볍다. 철 모르는 난 쭈쭈바의 달콤함이 좋았다. 무더위 속 할머니 따라 옥수수 팔던 오늘도 이렇게 집에 도착하면 나의 임무는 끝이다.

오후쯤 되어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뜨거운 여름날 뜨거움과의 싸움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옥수수를 삶은 구들장은 오늘 밤 방에서 잠들기 글렀다. 마당을 쓸고 모깃불을 태워 멍석을 펼친다. 저녁노을과 함께 마당서 저녁을 챙긴다. 이내 마당 불도 켜지고 시원하게 삶은 국수와 못생겨 팔 수 없는 옥수수가 저녁이다.

마당에 켜 둔 불빛 때문일까? 낮동안 어디 숨어있었나 싶은 두꺼비들도 모여든다. 두꺼비들은 덩치가 큰 거부터 작은 새끼까지 크기도 다양도 하다. 백열등 불빛 아랜 불빛 쫓아온 하루살이의 하루가 마감되는 순간이겠지. 두꺼비가 하루살이를 잡아먹는 소리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유독 하루살이가 많이 날아드는 날이면 아버지께선 그러셨다. 낼 비 소식 있겠다고... 그럼 정말 어김없이 다음날은 비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몰려왔었다.

한 옥수숫대에서 적게는 2개, 많게는 4개 정도 나오는 옥수수가 차례대로 익어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옥수수는 출하가 시작되면 하루가 다르게 신선도와 무르익음이 견고해진다. 방언으론 '금방 쇤다고' 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익은 옥수수는 그대로 이듬에 종자 씨앗으로 남겨두신다.

전날 비 와서 팔지 못했던 옥수수까지 합쳐 다음날 옥수수를 삶아 내는 양이 더 많아진다. 그만큼 나의 머리 위로 얹혀힐 옥수수가 덩달아 많아진다. 멋모르고 할머니 따라 옥수수 팔러 다녔던 기억들이 매년 옥수수만 보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드리운다. 9살의 어린 나에게 돌아가 그때 뜨거운 다라가 지금 너의 정수리를 납작하게 만든 거 같아 미안해~그리고 참 대견했네~! 하고 말해주고 싶다.

강원도가 고향인 내가 옥수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보다. 매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보내주는 고마운 친구가 있다. 벌써 몇 년째인지 그저 내가 옥수수를 좋아한다고 매년 챙겨 보내주는 게 당연하지 않거늘. 이 고마운 친구에게 이 순간도 참으로 고맙다. 애벌로 삶아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어두기까지 우리 집 냉동실 제일 위칸엔 친구의 행복으로 보낸 나의 행복도 꽉 차있다. 옥수수가 가져다주는 애증과도 같았던 이야기는 또 남겨두고 쫄깃하고 달콤한 늦여름날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행복이 층층이 쌓이고 추억도 알알이 맺혀 방울방울 그려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