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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Aug 31. 2021

초가을 장마가 전하는 말

그땐 그랬지

4계절을 가진 곳에 태어난 난 4계절을 모두 사랑한다. 4계절을 모두 사랑하기까지의 유연함은 중년이 되어가는 길목에 그 포용력도 관대해지는 듯하다. 늦여름이 태생이라 그런가? 여름이 지나갈 때쯤 짧아지는 해의 길이를 다시 어떻게든 잡고 싶을 만큼 아쉬워했다. 올해도 다 가는구나를 느끼며 4계절 중 봄과 여름만 즐겼으니 말이다. 입추가 지나자마자 무더웠던 올해의 여름도 저만치 가고 있다. 


짧아지는 해의 길이만큼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일몰시간이 그냥 마냥 아쉬움이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점심을 지나자 굵어졌다. 빗소리가 제법 단단하게 들려 창밖을 내다보니 굵은 빗줄기가 하염없이 내린다. 빗소리 들으며 내 마음도 덩달아 센티해지고 있다.


잠시 밖을 나갈 일이 있어 걷다가 가로수 옆 화단에 핀 나팔꽃이 보였다. 내리는 비에 나팔꽃은 고개를 못 들고 있다. 하트 모양의 이파리만 빗물에 번지르하게 날 반겨 준다. 이 가을비가 오고 나면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일교차가 날 텐데 푸른색 이파리도 곧 그 색을 잃어 가겠지. 그래도 나에게 하트 모양의 이파리를 보여주고 웃고 있는 듯했다.


가을엔 비가 반갑지 않다던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농사를 지으셨기에 당연 가을엔 햇볕이 더 필요했다. 벼도 익어야 하고, 감나무의 감들도 익어야 하고, 가을 들판은 촉촉한 비보단 햇볕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한 번은 벼도 무르익어 고개를 숙일 때쯤 큰 태풍이 휩쓸고 간 적이 있다. 황금색을 자랑하던 들판은 속수무책으로 주저 않았다. 가을걷이 한창이던 그 순간 벼들이 몽땅 잠겨 버렸으니, 그 속상함은 내가 가늠하기도 힘들 나이였다. 


논마다 다 익은 벼들이 쓰러져 누운 만큼 아버지의 마음도 쓰렸으리라. 큰 비가 내린 후의 다음날은 얄미울 정도로 더욱 청명하고 높고 맑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시며 쓰러진 벼들을 일으켜 세워 묶으셨던 모습이 선하게 그리워진다.  


나의 기억 속 가을은 논마다 후드득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쫓아 잡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며 뛰어놀던 계절이다. 메뚜기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기회도 많았지만 먹고 싶다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잡고 놓아주고 잡고 놓아주기를 반복하며 가을을 쫓아다녔다. 간혹 벼들 사이에 누렇게 변한 커다란 사마귀가 나오면 그대로 기절하듯 달아난다. 곤충들을 무서워하지 않은 편이었는데 왜 그리 사마귀는 다가가기 힘든 곤충인지 모르겠다. 지금도 커다란 사마귀는 솔직히 거부감이 먼저 든다. 아마도 사마귀가 잡아먹던 잠자리가 생각나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기계로 농사를 짓기 전이라 품앗이를 해가며 낫으로 벼를 베던 가을이 벌써 그리워진다. 가을을 재촉하는 초가을 빗소리에 내 마음도 가을이여라. 내일부턴 9월이 시작이다. 더욱 완연해지는 가을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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