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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Sep 02. 2021

언니 마중1

플래시는언제나열 일했다.

저녁 먹고 나니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 전화는 백발백중 언니의 마중 나오라는 전화다. 퇴근하면서 전화하면 소녀는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언니가 혼자 집에 오기엔 어둑한 길 무섭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소녀보다 8살 많은 5남매 맏언니. 원래 퇴근시간 맞춰 마중 가는 건 아빠 몫이었다. 아빠가 다니시기 전엔 할머니도 다니셨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소녀와 세 살 터울 작은오빠가 다니기도 했다. 조금씩 동생들이 크니 그날 컨디션에 따라 언니 마중 가는 건 서울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큰오빠를 제외하곤 세명의 동생들이 돌아가며 마중을 다니게 되었다. 플래시는 커다랬다. 건전지도 빨랫비누 두 개 크기였으니, 똑딱! 하면 켜지고 똑닥! 하면 꺼지는 빨간통에 검은색 헤드를 가진 플래시... 오른쪽으로 돌리면 잠기고 왼쪽으로 돌리면 열리는 지금은 기억 속의 플래시에 의지한 채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소녀가 살던 집은 주소로 따져보면 주택가와 멀지 않은 곳이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얕은 산에 들이다. 주소로는 강원도 강릉시 교1동. 그러나 소녀가 사는 곳은 얕은 산을 두 개를 넘어 작은 실개천을 지나 굽이 굽이 들어간다. 무덤도 두 곳을 지나니 무덤보다 더 무서운 앞이 보이지 않은 어둠이다. 매달 환한 보름달이 지고 그믐달이 뜰 때쯤 점점 어둠이 길어진다. 덩달아 어둠도 짙을 때다. 바로 요즘 같은 그믐달을 향해가는 시기.


언니가 출발한다는 전화에 늦장이라도 피우면 언니는 삐지기도 했다. 혼자 어둑한 골목길을 들어서 얕은 산아래 가로등 불을 지나 컴컴하기만 한 시골길이 소녀보다 더 무서웠을 것이다. 그날은 두 살 터울 남동생과 마중을 나갔다. 플래시를 쥐고 있는 사람이 뒷따른다. 앞사람 발걸음에 맞춰 적당히 걸어갈 수 있는 불빛을 뒤에서 비춰준다. 뒤에서 가는 거 보단 솔직히 앞에서 가는 게 덜 무섭다. 플래시 불빛도 받을 수 있고 뒤에 누군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환한 낮엔 이 어둠을 예상 못했지만 늘 다니던 길을 익숙하게 내딛고 간다.


주택가를 거의 다다랐을 때쯤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오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많아질 때쯤 휴~ 안도한다. 조금만 더 가면 환한 가로등들이 즐비한 주택가에 다다르게 된다.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플래시가 창피해지는 순간이다. 주택가 바로 옆 담벼락은 여고 담벼락이다. 이 담벼락을 따라 환한 곳으로 쭉 걷다 보면 여고 교문 앞이다. 여기가 언니와의 접선 구역이다. 


교문 앞엔 조경으로 자리한 작은 사철나무가 있었다. 동그랗게 조경이 되어 걸터앉기에도 안성맞춤인 얕트막한 오르막이었기에 엉덩이를 걸친 채 남동생과 소녀는 언니를 기다린다. 언니는 어디쯤 왔을까? 하는 마음으로 쪼그려 앉아 돌멩이도 만지작 거린다. 적당한 나뭇가지로 바닥에 직직~ 그림도 그려보며 두 동생은 기다림이 익숙한 듯 한 모습이다.


저만치 뚜벅뚜벅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반복된 학습의 효과일 수 있지만, 분명 그 실루엣과 구두 소리는 언니다. 아~! 반가워라. 소녀는 다시 왔던길로 되돌아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길은 확실히 덜 무섭다. 아니 하나도 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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