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고 향기롭게 Nov 19. 2021

김장하는 날

매년 이맘쯤 되면 김장배추는 새끼줄로 돌돌 묶여있다. 김장배추의 역할을 위해 얼지 말라고 돌돌 말아 두셨다.

추운 겨울을 위한 월동준비의 첫걸음은 김장으로 시작했다. 김장배추는 어느 날 칼로 베어지고 마당 가장자리 수돗가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몇 포기를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배추를 쌓아두고 일교차에 얼지 말라고 덮개를 덮어둔다.


다음날이면, 배추는 겉은 다듬어지고, 반으로 갈라 굵은소금으로 온몸을 적신다. 사정없이 뿌려진 굵은소금 덕에 커다란 고무대야에 하늘을 보고 누웠다. 커다란 대야엔 소금이 뿌려진 배추 차지였다. 김장을 담을 독에도 일단 절인 배추가 차지한다. 하루의 일과는 배추와 씨름하다 저문다. 그렇게 하룻밤을 재우 고나니, 배추는 시들시들 소금에 절여있다.  가장 안쪽 뿌리(?) 부분을 툭 떼어 간을 본다. 어느 정도 간이 맞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배추를 샤워시키기 바쁘시다. 몇 번을 씻기를 반복하다 채반에서 마지막 물기를 쫘악 뺀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양이였으니, 본격적으로 양념을 버무릴 준비를 한다.


황태 대가리를 물에 끓여 육수를 내고 여름 내내 키운 고추를 잘 말려 빻은 고춧가루와, 며칠 전부터 까기 시작하여 절구통에 찧어놓은 다진 마늘, 어제저녁 채 썰어둔 무와 섞박지용 무도 따로 두고, 한편엔 깍두기용으로 썰어둔 무도 대기 중이다. 시장에서 사 오신 새우젓도 넣고 소금과 고춧가루 기타 양념 등등으로 김장용 양념을 고무장갑을 끼고 버무리신다. 내가 기억하는 김장김치의 풍경은 어른들 손끝을 쫒고 있다.


날이 밝아지자 동네 어르신들이 오신다. 우리 집 김장으로 품앗이가 시작이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양념을 골고루 바르고, 잘 발라진 김장김치는 아버지께서 미리 묻어둔 김장독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김장독은 내 키만 했다. 김칫독은 세 개 정도 되었다. 두 개는 김치를 담고 한 개는 무를 담을 예정이다. 양념이 발라진 김치들은 차곡차곡 김칫독으로 자리 잡아주었다. 마지막엔 깍두기와 총각김치, 섞박지도 버무려지면서 김장은 거의 막바지를 향한다. 중간중간 힘쓰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셨다. 김장김치는 버무려 한 조각 툭 떼어먹던 맛이 생생하다. 어린 내게도 먹어보라고 한입 떼어 돌돌 말아 입에 넣어주시던 이웃집 할머니. 김장하고 장판엔 김장양념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물들어 있다. 김장한 티를 제대로 낼 수 있었으니, 아무리 닦아도 소용이 없다. 한겨울 김치만 있다면 겁날 거 없던 김장을 해버렸으니 어른들은 한시름 놨으리라.


나에겐 아직 남아있는 김장이지만, 이 또한 즐겁게 즐기리라. 더 나아가 내 아이가 김장을 할지 모르겠지만, 바꿔가는 생활문화에 또 적응하지 않을까 싶다. 김장철에만 할 수 있는 김치가 김치만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 거 같다. 김장을 담그며 나누던 정(情) 문화. 그 기반에 정서적 정 문화가 깔려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아삭아삭 김장김치에 한가득 정을 담아 나누던 그때가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만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