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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Dec 12. 2021

겨울 여백

아버님 정말 다행이에요. 사랑해요

지난 주말 이른 아침  큰 시누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핸드폰 초기화 작업 중이었기에 옮겨지지 않은 전화번호가 낯익으면서 낯설었던 순간.


뒷자리 번호를 계속 되씹다 아! 큰 시누의 전화번호란 걸 알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주민번호를 물으려 했다시며 해결되었으니 나중에 전화를 다시 주겠다시며 급히 끊으신다.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하며 다시 주말 아침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후 늦게야 알게 된 사실, 이른 아침 김장배추를 트랙터에 싣고 팔러 가시던  시골길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뒤따라오던 트럭이 뒤에서 부딪혀 트랙터는 뒹굴고 아버님께서는 운전대를 꼭 붙잡고 뒹굴던 트랙터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셨다고 한다. 말로만 듣기엔 마음에 평정심을 잃는 순간이다. 급히 119도 부르고, 사고 수습을 위해 다급한 모습이다.


트랙터는 완파되었지만 깨진 창문 유리에 목덜미 옷이 찢어졌을 뿐 아버님의 겉모습은 큰 화를 피한 모습이라며 큰 시누는 우리 부부 놀라지 말라시며 말씀해주신다.


그리고 일주일.

아버님 계신 병원을 찾아 달려왔다. 서울에서 온다는 자식을 기다리시는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는 순간이다. 병원 1층 로비에서 링거 꼽고 문쪽만 하염없이 바라보시며 무심하신 듯 오래 기다리신 눈치시다. 더 빨리 찾지 못한 마음이 죄송할 따름이다.


시간에 맞추어 포항에서도 둘째 시누네가 오셨다. 서로 안 겹치게 말을 안 했는데 겹치게 되었고, 아버님은 내심 반가움을 "뭐하러 와~"하시며 병원 로비에서 한 시간 넘게 자식들 언제 오는지 기다리고 계셨다고 어머님께서 전해주신다.


링거 꼽고 계셔서인지 손등으로 퉁퉁 부은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이만하시기 천운이지 않을까 하며 얼굴 뵙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평생 농사일만 아시고 몸 아끼지 않고 일하셨던 아버님이시기에 농한기라 마음의 조급함도 덜할 것이라 여기며 철없는 아들 내외는 "또 올게요~"인사를 남기고 돌아온다.


얼굴 뵈어서 일까? 어제는 보이지 않던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의 여유도 느끼게 되어 감사함이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걱정되지만 물리치료도 꾸준히 받으시며 일상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들판에 거대한 마시멜로처럼 가을걷이를 마친 농번기의 끝자락에서 아버님도 저리 일하셨을 생각에 뭉클해진다.


겨울 이주는 여백에 다시금 에너지를 충전하시고 팔순을 앞두신 아버님 빠른 쾌차를 바라요~


겨울산들은 민둥 한 모습으로 자연의 색을 품고, 그 속에 느껴지는 여백은 새로운 생명을 품고 준비 중일 테니  창밖 넘어 겨울 풍경에 심심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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