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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Dec 21. 2021

새알심이 동동 뜨면

내 마음도 새알심처럼 동동동


내일이 절기로 동지다.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스물두 번째 절기.




시어머니께서 팥 한 봉지를 챙겨주셨다. 팥만 주신 게 아니지만 가을에 수확한 팥을 이렇게 보내주신 건 '나중에 팥죽을 해 먹으렴'이 담긴 마음 같아 고이 모셔두었다. 검은콩, 메주콩과 함께 온 팥을 싱크대 안쪽에 넣어두었더니 얼마가 지났을까? 바구미가 생겨 그만 팥의 일부를 버려야 했다.


나머지 팥을 부랴부랴 삶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동지가 오기를 기다린 바로 오늘.




동네 떡집에 새알심이 있을까? 싶어 둘러봤지만 새알심을 발견 못하고 떡집에서 파는 찹쌀가루를 한 봉지 사 왔다. 그래 이왕 하는 거 아이들과 새알심부터 빚 어보자란 마음으로 갈아타고서 말이다.


"애들아~새알심 만들자~"며 저녁밥 먹은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뜨거운 물에 조금씩 부어가며 찹쌀가루를 익히는 익반죽을 하고, 동글동글 새알심을 빚는다. 마치 한해 나쁜 기운 다 물러가고 새희망을 가득 품고 이루게 해 달라는 듯 손바닥에 빚는 새알심에 염원과 기도와 바람을 담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새알심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듯하다.




냉동실에 삶아 두었던 팥은 낮에 미리 해동을 시켜 놓은 상태.


믹서기로 갈아서 팥물을 만들었다.

믹서기로 갈고 팥물 만들기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만들던 팥물 만들기가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다. 가마솥 한가득 끓이는 양이기에 팥물을 만드는 엄마의 손길이 바쁘셨다. 옆에서 난 바가지로 체에 물을 부어드리면 엄마께선 손으로 팥을 으깨어 팥물을 만드셨었다. 엄마와 호흡을 맞춰가며 적당한 타임에 물을 붓고, 엄마께서는 또 으깨시고 반복하기를 커다란 대야에 한가득 팥물을 만들고 나면 나의 임무는 완수다.





팥물을 한 냄비 만든 후에야 나의 믹서는 멈췄다. 그리고 불린 멥쌀을 붓고 팥물을 끓였다.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팥이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정성을 들인다. 첫째가 이 모습을 보고 한마디 거든다. "어 이거 코코아 같은데요?" 순간 찬바람 불면 아이들 몸을 녹여줄 따뜻한 음료! 코코아가 딱이다. 코코아 같다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코코아 같다는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통팥과 멥쌀을 넣고, 거품도 걷어주고




소금도 넣고 간을 맞춘다. 바글바글 팥물이 끓고 쌀알이 반쯤 익을 무렵 새알심을 넣기 시작했다. 나무주걱은 쉬지 않고 계속 열 일하는 중이고, 새알심이 한두 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팥죽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한다. 떡집 사장님 말씀이 새알심이 떠오르면 불을 끄라고 하셨기에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냄비 수면 위로 새알심이 빼곡히 찬다. 내가 원하는 적당한 농도다. 불을 끄고 잔열에 수증기가 좀 더 날아가게 두었다. 아이들은 새알심 나이수대로 먹으면 되냐며 엄마 나이 내가 대신 먹어준단다.




완성된 팥죽은 한 김 식혀 아이들에게 맛보기로 조금씩 주었더니 새알심 리필이 쇄도한다. 팥죽을 만들어 본건 결혼생활 14년 만에 두 번째. 대략 성공적이다. 내일 아침은 팥죽으로~!







엄마께서는 가마솥 한가득 팥물을 끓이신다. 참나무 장작은 벌건 숯을 만들며 바글바글 끓는 가마솥에 쌀알도 부으셨다. 아궁이 속 불 조절을 해가며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눌어붙지 않게 한창을 끓이셨다. 난 팥죽이 완성되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잠들어버린 전날 밤이었으니, 동짓날 아침 한가득 끓여진 가마솥 팥죽이 반가움으로 가득했다. 팥죽은 다른 커다란 그릇에 옮겨져 쟁반에 덮어진 상태로 말이다.


이제 '새알심을 나이수대로 먹으면 진짜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어른들은 말씀해 주셨다. '그럼 할머니께선 70개를 드셔야 하나?' 하며 의아해하는 어린 내가 팥죽 대야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드문드문 팥죽은 마당과 장독대 근처에 뿌려져 있었다. 나쁜 기운이 다가오지 못하게 말이다. 어른들의 주술적 행동에 익숙했던 환경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팥죽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즐거웠던 그 시절.


동지 전날 팥죽을 끓여주시던 엄마의 가마솥 팥죽이 그리운 오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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