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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Jan 27. 2022

"나떼는 사과도 귀한 과일이었어"

할머니께선 빨간 고무 다라를 머리에 이고 마당 안으로 들어오신다. 할머니의 머리의 임을 받아 마루 한편에 둔다.

백발에 은빛 비녀를 하신 할머니. 고된 삶의 모습이 그대로 깊이 파인 주름살이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빨간 고무 다라엔 과일이 한가득 들어있다. 겨울이라 여기저기 얼어서 상품 가치도 없는 사과, 쭈글쭈글한 껍질을 간직한 사과, 한쪽이 움푹 썩어 크기가 커도 팔 수 없던 사과.. 사과의 모습을 할 뿐 팔 수가 없던 사과를 한가득 할머니께선 가져오신 거다. 저녁상을 뒤로 물리고 온 가족이 사 과다 라에 둘어 앉았다.

할머니의 손은 또 바쁘시다. 칼로 사과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깎아 주신다. 쭈글쭈글한 껍질도 벗겨 주시고, 얼었다가 살짝 녹은 사과를 껍질을 벗겨 건네주신다. 한입 물어 입안 가득 사과를 오물거리며, 그래도 사과를 먹을 수 있음에 이 순간이 마냥 좋다.


할머닌 시장 단골 과일가게에서 한가득 얻어 오셨다. 어느 날은 과일가게 주인 할머니께선 나를 보고 그리 자랑하시던 손녀냐며 나를 한번 더 바라보신다. 난 꾸벅 인사를 드렸다. 그 당시 3학년 때 교내 신문에 내 글이 등록되었던 그날 할머니께선 나를 자랑하셨던 거다. 다소 무뚝뚝하셨지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고, 칭찬이 인색하셨지만 시장 안에 손녀 자랑으로 손주들 사랑을 표현하셨던 할머니.


과일이 먹고 싶다는 말에 할머니께선 과일가게에서 팔지 못하고 남긴 과일을 얻어오셔 우리를 먹이셨다. 어렸지만 감각적으로도 상황이 이해된다. 그래 이거라도 어디냐며 맛을 떠나 과일을 먹는 것에 그저 좋았다. 겨울의 한가운데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먹고 남긴 사과껍질은 외양간 소여물로 마지막 역할을 다한다.


과일을 좋아해도 맘껏 먹을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요즘처럼 흔하디 흔한 과일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긴 터널 속에 어려운 시절을 빠져나온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라테를 자꾸 소환하게 된다. 저녁을 먹이고 냉장고 안에 사과를 두 개 집었다. 껍질을 깎아 접시 위에 놓고 아이들 먹으라며 접시를 아이들 쪽으로 내민다.


나 또한 다 해줄 수 있는 부모는 못되지만, 아이는 사과가 아닌 샤인 머스킷을 먹고 싶다고 한다. 지금 아이들은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의 결핍이 삶에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맘껏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보라고 엄마의 능력은 사과까지 인 거 같다며 말문 막히는 말을 던졌다. 첫째는 씩 웃으며 "사과가 맛있네~"라며 응수한다. "라테는 사과도 귀한 과일이었어"~ 하며 되받아 말하곤 일단락된다. 샤인 머스킷 맘껏 먹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아이들이 알길 없지만, 샤인 머스킷쯤 맘껏 먹일 수 있도록 또 열심히 살아보자꾸나~!

아삭아삭  오늘 저녁 사과는 참 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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