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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Sep 06. 2021

언니마중 3

파피야 보고 싶다.

기억을 소환하자면 중년의 남동생이 2학년쯤 여름 장마가 한창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오니 남동생은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왔었다.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대책 없이 강아지를 어떻게 키우냐는 것이다. 그 전엔 할머니께선 강아지에게 정을 주었다가 정 떼기 힘드셨던 기억이 남아 있으셨다고 아빠가 그러셨다. 참 영리하고 이뻐했던 백구가 있었는데 그만 쥐약 먹고 죽었다고 하셨다. 그 뒤론 할머니께선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서도 강아지를 키우기를 힘들어하셨는데, 남동생이 장맛비 속에 안고 온 삽사리 믹스종을 안고 왔으니 말이다.


할머니께선 강아지를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놓으라셨다. 동생은 대문 앞 커다란 쓰레기 같은 고무통 속에 강아지가 들어있어 누군가가 버린 거 아닌가 해서 데리고 왔다고 하니 다시 강아지는 동생품에 안겨 원래 위치로 가고 있었다. 나도 그때까지 강아지를 키워 본 적이 없었기에 동생이 데려온 강아지를 키우자고 할머니께 통사정을 했다. 마지못해 할머니께선 허락하셨고, 동생은 가던 길 멈춰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엔 반려견이 생겼다. 얼굴은 삽살개 모습을 하고 털 길이도 있었다. 다리 짧은 게 아쉽지만 참 잘생겼단 생각을 했으니 작은오빠가 이름을 파피라고 지어 주었다.


파피가 우리 집에 오고선 마당엔 강아지 식구가 하나둘씩 늘었다. 지금처럼 중성화 수술이 있을 리 만무한 그땐 동네 파피를 닮은 새끼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 집들에선 우리 집 파피 새끼라며 한 마리씩 들고 오셨다. 본의 아니게 마당엔 반려견들이 늘어났다.


오늘도 언니 마중을 가야 했다. 플래시를 손에 들고 문을 여는 순간 파피도 따라간다고 낑낑거린다. 목줄에 묶여 있던 파피가 유일하게 달릴 수 있는 순간이 왔으니 언니 마중 가는걸 누구보다 즐겼다. 사실 파피만 있으면 하나도 겁이 안 났다. 파피는 절대적으로 내편이었다. 맞은편에 누가 오든 달려가 물어뜯을 파피 기세다. 주인에게 대한 충성심이 강해서 일까... 지금 돌이켜봐도 파피의 성격은 절대적 주인 복종이었으니...


파피 목줄을 손에 잡는 순간, 파피는 신났다. 내가 파피를 데리고 가는 건지 파피가 날 데리고 가는 건지 질질 끌려 걸음이 빨라진다. 파피는 어둠 속에 나의 든든한 파트너였으니 언니 마중가는 길은 무적이다.

어두운 길을 걷다 보면 무서운 건 귀신같은 게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간혹 동네 사람들도 지나다니긴 했지만 어둠 속에 맞은편에서 오는 낯섬이 제일 무서웠던 기억이다. 그러기에 파피는 그 낯섬을 한방에 물어버릴 듯한 기세로 날 지켜주었다. 솔직히 파피가 하도 으르렁 거려서 맞은편에 누군가 오는 듯하면 파피의 목줄을 잡아당겨 파피를 품에 안았다. 파피가 물기라도 하면 정말 더 곤란하지 않은가.


이날이 그날로 기억된다. 파피가 사고 치고 만 그날... 맞은편 골목길 아저씨 복숭아뼈 부분을 물어버렸으니,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파피를 품에 안고 죄송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아저씨께 우리 집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그 후 어렴풋한 기억은 아저씨게 치료비를 전했던 기억에서 가물가물 하다.


이렇듯 언니 마중에 최적의 파트너이자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긴장하게 하는 파피였으니, 한 성격 했던 파피가 나의 어릴 적 도덕 친구가 아녔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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