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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Mar 06. 2022

"건조대가 만신창이네?오늘 엄마를 보는듯해요"

살림의 영역 중 제일 자신 없는 빨래의 영역!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을 둔 우리는 네 식구. 네 식구 빨래를 오롯이 말려주는 우리 집 건조대는 하얀 철제 페인트 칠을 곱게 드리운 만지면 차가울 거 같으면서도 차갑지 않은 차가운 거 같으며서도 때론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건조대는 우리 네 식구 옷을 말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건조대는 우리 식구와 만난 지 1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계절로 따지면 6번 맞이한 시간 속에 건조대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삶이 무거웠을까? 우리 집 구조상 빨래는 안방 한편에서 말린다. 비좁은 공간 속에 아이는 안방 침대 위에 뛰어놀다 건조대로 굴러 건조대를 넘어뜨리기도 했고, 건조대 아래에 숨어있는 숨바꼭질도 하다 건조대를 툭 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 번은 침대에서 구르기를 하던 둘째는 건조대 쪽으로 굴러 두발이 건조대를 내리치며 건조대는 쓰러졌다. 동시에 빨래도 쓰러지면서 건조대 위 대 하나가 똑! 부러졌다. 아!~ 당장 빨래를 말릴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이 지글거렸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나무젓가락을 버팀목 삼아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마치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박 씨를 물어주는 제비다리를 고치는 마음으로 '접히지 않아도 좋으니 펴있기만 해 다오'~하며 볼품없이 칭칭 감아버렸다. 다행히 건조대에 다시 빨래를 널수가 있게 되기는 했다. 둘째에게 다치지 않게 조심히 놀라며 방을 빠져나왔다.


빨래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폈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사실 난 빨래에 소질이 없다. 살림 중에 빨래가 제일 힘든 살림 영역이다. 설거지나 청소는 그래도 하겠는데, 빨래는 미루고 또 미루다 정말 더 미뤘다간 안될 때쯤 벼락 치리고 할 때가 있다. 이런 나의 단점도 난 잘 안다. 그리하여 빨래를 잘하는 주변 지인분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한다. 어떻게 빨래를 잘 개는지... 빨래는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난 왜 이리 빨래가 힘든지.. 등등 좋은 이야기, 힘이 되는 이야기를 얻고 싶어 나의 힘든 부분을 이야기도 해보았다. 그래!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빨래의 영역. 빨래는 내가 소질이 없는 건 확실히 인정하겠다.


그래도 네 식구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꺼내어 다시 건조대에 널고 다시 걷어와서 개고, 각각의 옷들을 포지션을 시키는 일련의 모든 일들은 엄마인 내 몫이다. 해도 해도 늘지 않은 살림의 영역.. 빨래! 난 빨래가 여전히 힘들다.


그러던 중 빨래 건조대 아랫부분이 또 망가지고 말았다. 이번에도 어떤 충격이 가해졌을지 상상이 된다. 테이프는 또 부러진 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고, 가느다랗게 건조대는 연명 아닌 연명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빨래를 하기 싫어도 하고 나면 나름 뿌듯하기도 하다. 건조대에 착착! 털어서 널고 나면 왠지 반듯하게 걸려 말려질 생각 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기에 나의 강박증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전 건조대를 들여다보니 상태가 이상해진 것을 느꼈다.  우리 집 구조상 안방 침대 옆에서 빨래를 말려야 한 상황인 건조대가 이젠 휘어져 있다. 빨래를 곱게 널고 싶어도 삐뚤어진 건조대에 마음도 덩달아 삐뚤어진 기분이다. 빨래를 널어놔도 반듯해 보이지 않은 모습에 불편하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좁은 공간에서 구르고, 뛰고, 가끔은 숨바꼭질도 해야 하는 아이의 특성상 건조대는 몇 번을 넘어지고 일으키고 넘어지고 했을 터이다.


건조대를 보고 있으니 더 이상 건조대에 빨래를 설 수 없음을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반듯한 건조대로 다시 사야겠다고, 건조대를 보고 있으니 더 이상 불편하여 못쓰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건조대를 들고 거실로 나왔더니 첫째가 보고 한마디 한다.


"건조대가 만신창이네? 오늘 엄마를 보는듯해요~!"


첫째 딸아이의 말에 건조대를 다시 보니 웃음이 빵~ 터졌다. 사실 요 며칠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내 모습을 첫째가 안쓰러워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는 철이 들었는지 속이 깊은지 엄마의 컨디션을 잘 이해해주고 오늘도 일하고 온 엄마에게 안쓰러움과 그 모습을 해학적으로 말을 해주니 내 마음은 웃음으로 이 순간을 웃으며 넘겨본다.


건조대도 쉬는 날 없이 우리 네 식구가 입을 옷을 위해 열 일했을 것을... 부러진 대에 나무젓가락으로 버팀목을 만들어 구부러지지도 않게 된 순간에도 옷을 건조해주느냐 애쓴 건조대가 측은하게 느끼면서도 고마움이었다.

빨래에 소질 없는 내가 건조대에게 그동안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만신창이 같다던 아이의 말에 건조대를 다시 보게 되었고, 건조대가 만신창이 될 때까지 애써준 시간에 감사함으로 한방 한편에 자리 잡아 주었다.


오늘만큼은 빨래를 널지 않아도 된다.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조대를 오늘 하루 쉬게 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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