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꽂힌다’라는 말이 있다. 대학 시절, 말 그대로 마음이 꽂힌 후배에게 꽃을 선물했던 적이 있다. 빨간 장미였고, 성년의 날이었다. 후배는 꽃을 받으며 집에 화병이 없다고 했고, 그날 곧바로 화병을 주문했었다. 하지만 얼렁뚱땅 혼자만의 썸으로 끝나고, 그 화병은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됐었다.
우리 집은 꽃에 인색했다. 가세가 기울고 나서부터 부모님은 맞벌이에 정신이 없었고, 집은 단지 먹고 자는 곳에 불과했다. 그런 집에 스파이같이 수상한 화병이 하나 생기자 툭툭 건들기만 할 뿐, 그 누구도 무언가를 꽂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어디에도 꽂혀 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누나와 내가 일을 시작하며 우리 식구가 무언의 언덕을 지났다는 느낌이 들 때쯤. 오래전부터 집 앞에 있었을 꽃집이 눈에 들어왔다. 꽃다발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서며 “엄마 생각나서 샀다”고 말 했었다. 그때 처음 엄마의 얼굴에서 소녀가 보였다.
분주히 무언가를 찾아 나선 엄마는 그때 그 화병을 찾아 씻었다. 그리고 내가 사 온 꽃을 꽂아 해가 잘 드는 곳에 놔뒀다. 그 이후로 화병에 꽃을 꽂아 둔다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 마음이 꽂힌 엄마의 얼굴이다. 그 마음은 소녀같이 새초롬하고 발그레해서 참 보기 좋다. 자꾸 보고 있으면 어딘가 슬픔이 고이지만, 그 슬픔마저도 두고두고 오래도록 보고 싶을 뿐이다.
이제 그 화병에는 항상 꽃이 꽂혀 있다. 부산,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그랬다. 그런데 어디서 샀는지, 구했는지, 받았는지, 뽑았는지 모를 그 꽃은 거의 시들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꽃을 샀던 그 꽃집에 들러 두 번째로 꽃을 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얼굴에 또다시 소녀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