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간밤에 어릴 적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꿈을 꿨는지, 삐악삐악 환청에 눈을 뜨면 ‘오늘은 진짜 닭가슴살 못 먹겠다’ 싶은 날. 그런 날이면 집에서 요리해 먹기도 귀찮아서 슬쩍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휴대폰 화면을 툭, 툭. 스크롤을 하염없이 내려도 아는 곳, 아는 맛이다. 브랜드 로고만 봐도 메뉴들의 맛이 혀끝에 느껴질 정도.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평소 먹기 힘든, 주문진에 없는 음식들이 간절해진다. 누가 보면 대단히 특별한 음식을 떠올리나 싶겠지만, 그럴 리가. 주문진을 과대평가하면 큰코다친다. 이곳은 산해진미가 넘치는 관광지지만 정말 소중한, 내 삶에 없어 선 안 될 신앙 깊은 몇몇 음식점이 없다. 예를 들자면 써브웨이…
패스트푸드를 안 좋아하는 나도 써브웨이만큼은 굉장할 만큼 굉장히 좋아한다. 초록색과 노란색의 찬란한 컬러로 도배된 매장 문을 열었을 때 축복 같은 그 특유의 냄새 아니, 향기가 심장을 압도한다. 두근두근 아니, 쿵쾅쿵쾅. 15cm 2개는 기본이다. 각각 다른 맛으로 먹지만 하나는 무조건 미트볼이다. 오이 빼고 올리브 많이. 빵 파는 건 기본이고 바짝 구워 달라며 강조에 강조를 아끼지 않는다. 더불어 미트 소스 최대한 많이 달라고 애원한 다음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로 마무리한다. 미트 소스 본연의 맛과 풍미를 살리는데 이만한 순정 튜닝 같은 소스 조합은 없다. 그렇게 나온 샌드위치를 신나게 한입 앙. 크게 베어 물면 천국행 직통 열차가 따로 없는데, 신앙이 아니고 선 베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강원도에 써브웨이는 딱 하나 있다. 에게? 그것도 해안 도시들과 정 반대에 있는 원주시에 딱! 하! 나! 아무리 좋아해도 한 끼 해결하자고 차로 136km를 가기도 뭐해서, 18km 떨어진 맥도날드로 향했다. 18km. 그렇다. 맥도날드도 귀하다. 강원도 해안을 잇는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에 맥도날드는 단 3개다.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강릉점도 차로 25분 거리에 있다.
도시에 살 땐 롯데리아, 던킨도너츠, kfc, 버거킹, 이삭 토스트, 노브랜드 버거 등등등. 수많은 프랜차이즈가 생활반경 1km 안에 넘치고 흘러서 시선을 익사시킬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울 홍대 근처에 살 땐 회사가 있는 상수동까지 걸어서 출퇴근했다. 한 20분? 그 사이에 거의 모든 프랜차이즈가 최소 하나씩은 당연히 있었다. 그중 가장 압권이 바로 써브웨이였다. 1km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무려 세 개나 줄지어 있었으니까. 서울 사는 자취생에게 간편하면서 선택의 폭도 넓고, 채소에 고기까지 골고루 먹는데 맛까지 좋은 저렴한 한 끼는 흔하지 않다. 그런데 써브웨이는 그 어려운 걸 손쉽게 해냈고, 케르베로스처럼 세 개의 면면을 자랑하며 집 가는 길을 지키고 서 있는 나머지 손쉽게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자주 가지는 않았다. 일주일에 한 다섯 번? 그 당시 나의 절제력은 눈물이 날 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다른 프랜차이즈를 무시했던 건 아니다. 홍대는 패스트푸드의 박람회나 다름 없는 곳이기에 배가 가벼워지면 덩달아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어디든 입맛 따라 들어갔다. 당연하다는 듯 메뉴를 골랐고, 당연하다는 듯 패스트하게 나왔으며, 당연하다는 듯 패스트하게 먹어 치웠다. 하지만 이곳, 강원도에선 그 모든 게 당연하지 않다. 발에 차일 만큼 많았던 써브웨이는 이제 산을 넘어가야 먹을 수 있는 이벤트가 됐고, 나에게 패스트푸드 최하위 순위였던 맥도날드는 감사한 별미가 됐다. 너무나도 당연했던 것들이 나에게서 멀어지고 나서야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제서야 익숙함의 반대말은 낯섦이 아니라 특별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꽤 따가워진 햇살이 차 안을 데워 놓은 탓에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맥도날드로 향했다. 때 묻지 않은 구름이 바람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이끌려 갔다. 둥실둥실. 덩달아 마음도 두둥실. 스피커에선 죠지의 ‘let's go picnic’이 흘러나왔다. 오늘의 도시락은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길 바라는 1955버거. 감자튀김 대신 맥너겟, 음료는 제로 콜라. 이보다 특별한 외식은 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