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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고 Oct 11. 2023

밤바다 송별회

  강원도 바다는 어둠이 짙다. 그래서 달빛도 마음 편히 두 다리를 쭉 뻗고 눕는다. 빛이 누워있는 곳엔 잔물결의 떨림이 내비치고, 그 떨림은 우리와 수평선 너머를 이어주는 금빛 다리가 된다. 어둠을 헤치고 오고, 가는 모든 것들을 위해. 



   우리는 메라의 이별을 위해 짙은 밤바다에 모였다. 달빛은 여전히 수평선 너머 어딘가로 쭉 뻗어 있었고, 메라는 내일 밤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우리는 금빛 다리의 입구이자 달빛 끝자락이 꽂힌 해변에 앉아 불을 피웠고, 고기를 구웠다. 누군가는 요즘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라며 음악을 틀었고, 누군가는 술을 사 왔고, 누군가는 쌈장 뚜껑을 열었다. 자, 잠깐! 마늘은 다 굽지 마! 그렇다. 고기를 먹을 땐 생마늘을 먹는 편이다. 아무튼. 바다에 머무는 사람은 파도와 닮았다. 왔으면 언젠간 떠나니까. 오는 이유도 제각각, 가는 이유도 제각각. 누구 하나 똑같은 이유로 와서 똑같은 이유로 가는 법이 없는 것도 파도와 같다. 



   첨벙첨벙. 파도 소리 위로 음악이 틀리고,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모를 고기가 상에 놓이자 ‘잘 가’라는 말 대신 ‘잘 다녀와’라는 말을 외치며 술잔을 부딪쳤다. 거기까지가 이별을 고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였다. 그때부터 각자의 이야기를 짝지어 주고받았다. 요즘 어때? 하는 일은 잘 돼 가? 연애는 잘하고 있어? 정신없는 대화 사이로, 누구세요? 아! 우디라고 합니다. 송별회라고 해서 오긴 왔지만, 아는 얼굴보다 처음 보는 얼굴이 많았다. 그런 자리에선 입이 합죽이가 된다. 이름만 간단히 말하고 더 이상의 소개는 하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하다고 둘러댔지만, 실은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려는 나름의 노하우다. 



   ‘송별회’라는 타이틀이 없었으면 가지 않았을 게 뻔했다. 이미 꽤 많은 사람이 온다는 얘기는 들었고, 그런 자리에 가면 10분도 안 돼 정신이 혼미해지기 때문이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쓸 것들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공간에 흐르는 다양한 냄새와 소리, 주변의 색감과 물건들의 배치 등. 특히 상대가 어떤 표정과 제스처, 뉘앙스로 말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는 가장 민감한 자극점이다. 그리고 그 자극은 옷에 베인 고기 냄새처럼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생각으로 남는다. 머리도 빨래가 되면 좋을 텐데 한번 베인 생각은 곱씹고, 곱씹고, 곱씹게 된다. 어떤 마음과 의도로 그런 표정과 제스처와 뉘앙스와 단어를 사용했을까. 따위를 붙잡고 며칠을 씨름하는 식이다. 그중에서 상처로 남을 만한 말들은 오래도록 샅바를 붙잡고 놓아주지 못한다. 상대 의도와는 상관없이 혼자 끙끙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 테이블에 비치된 의자는 3개 면 족하다. 그 이상 넘어가면 수없이 쏟아지는 신경들을 처리해 낼 여력이 없어진다. 그때부턴 단전 밑바닥에 저장해 둔 에너지까지 싹싹 긁어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통에 사람 많은 자리는 언제나 피곤하다. 



   그런 이유로 사람 많은 자리에선 최대한 말을 아낀다. 송별회 자리 역시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 돼서 고기만 연신 주워 먹으며 몇몇 질문에만 대꾸했다. 그러다 개중에 친한 동생이 요즘 고민이 있다며 털어놓았다. 내용을 대충 얼버무리자면, 친해질수록 점점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면서 생기는 오해와 난감함 등이었다. 8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군중 속에서 맨 끝자리에 마주 앉은 우리는 그 고민에 대해 꽤 오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주위의 시선이 우리에게 모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입이 더해지고, 결국 모두가 동생의 고민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의견과 각자의 경험, 각자의 해결책 등이 덜 익은 게 확실한 고기 더미 위로 쏟아졌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들었던 나는 그 토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마지막으로 동생을 다독이며 비슷했던 내 경험을 말했다. 진중하고 분명하게. 말이 끝나자 누군가는 나에게 꼰대라더라. 그날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메라는 저쪽 끝에서 혼자 고기를 굽고 있었다. 역시 이런 자리는 안 오는 게 산책이었다.



   그 자리에선 웃고 넘어갔지만 그 ‘꼰대’라는 단어가 며칠을 머릿속에 맴돌았다. 묘한 상처도 상처지만, 이제 정말 각자의 생각과 의견조차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됐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그랬을까. 그럼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장난으로 고민을 들었던 건가. 아니면 나의 경험이 거짓말로 들린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듣기 싫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자기 생각과 달라서 꼰대라는 단어로 악역을 만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표정에서 위선이 읽혔고, 손짓에선 무시가 들렸으며, 뉘앙스에서 자존감을 올리려는 노력이 보였다. 나는 이 사회의 주인공, 너는 이 사회의 악역.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절과 양극화를 만드는 사회적 도구이자 방법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하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생각에 결론은 없다. 그냥 그렇게 하나의 생각이 계속해서 다른 생각으로 뻗어 나가, ‘나’라는 숲을 이루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될 뿐이다. 한번 심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뽑을 수 없는 뿌리 깊은 나무 말이다. 그래서 항상 생각들에 물을 주고, 가지를 치느라 머리가 쉴 틈이 없다. 남들보다 민감하다는 건 생각의 노예가 되어 끊임없이 숲을 관리해야 하는 저주다. 



    메라의 집게를 빼앗아 고기를 굽고, 다 구웠을 때쯤 먼저 가보겠다는 인사를 했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문을 열고 손을 뻗어 저항하는 공기를 쓰다듬으며 시골 풍경을 바라봤다. 짙은 어둠이 깔린 들판엔 벼가 자랐을 텐데, 희미한 달빛으론 보이지 않았다. 달은 등 뒤에 있었지만, 바다만을 비추는 듯했다. 송별회는 달빛이 꺼질 때까지 이어지겠지. 칠흑 같은 공기의 저항은 너무 거칠고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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