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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고 Oct 17. 2023

단 하나의 형태



   아침잠이 많아져 하루가 엉망이 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였던 땡땡가게 영업시간이 여름시즌을 맞이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로 바뀌면서 2교대 출퇴근이 생겼고, 오전 출근은 원래대로 10시에서 8시, 오후 출근은 12시에서 10시였다. 호호형이 직원들 모두에게 각자 원하는 스케줄을 조사했을 때 나는 호기롭게 오후 출근을 택했다. 계획은 이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영어 공부와 원고 작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서핑을 하던, 태닝을 하던, 사진을 찍던 활용할 참이었다. 해 떠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그런데 10년째 오후에 글을 쓰던 버릇과 잠이 깨는 데 오래 걸리는 신체 스펙이 계획을 손쉽게 무너트렸다. 며칠간 시도해 봤지만, 오전 8시의 컴퓨터 앞은 몽롱한 백야 세계였다. 앞에 놓인 새하얀 워드프로세서 화면 위로 아무런 문장도, 아무런 단어도 적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운동을 갔다, 자정이 돼 서야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새벽 3시는 우습게 보일 만큼 늦게 잠들게 됐다. 



   알람을 오전 7시에서 8시로 수정했고, 그다음은 8시 반. 5시간 자는 건 너무 하지 않을까 싶어서 30분을 더 늘려 9시. 진짜 조금만 더 자자 9시 반. 그러다 결국 마지노선이라 다짐하고 10시로 맞췄다. 그런데 눈떠보니 11시 20분이더라. 참나, 어이가 없어서.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 알람 소리가 안 들리기 시작했다. 매일 잠들기 전 볼륨을 체크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설마 귀에 이상이 있나 싶었지만 천만의 말씀 되시겠다. 11시 20분에 울리는 창밖의 참새 울음소리가 그토록 청량하게 들릴 정도면 매우 정상인 것이다. 어쩌면 알람 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효과적인 고막인가 싶어 새 울음소리로 알람 설정을 바꿨지만 역시 라이브의 감동은 스마트폰 따위가 따라가진 못했다. 



   땡땡가게 출퇴근 날엔 11시를 넘긴 기상이 큰 문제까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쉬는 날까지 늦잠 자는 버릇이 이어져, 하루를 망치는 것. 나에게 쉬는 날은 귀하다. 밀린 빨래와 청소, 장보기, 반찬 만들기 등의 집안일은 물론이고 다양한 약속과 써도 써도 끝이 없는 원고 작업도 해야 하는데 늦잠을 자버리면 하루가 너무 짧아진다. 그렇게 짧아진 하루는 집안일이나 약속, 원고작업 등 중에서 하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럼 또 땡땡가게에 출근하는 날 틈틈이 해야 했고, 그럼 또 늦잠을 자는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엉망진창 인생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마트폰 알람은 해결책이 안 된다 싶어 자명종을 침대맡에 들였다. 기능이라고는 시간 표시와 알람, 딱 두 가지. 얼마나 한길만 파온 장인처럼 믿음직스럽고 강직한 성능인가. 이제부터 이 알람 장인은 아침 10시만 되면 정수리에 달린 쇠망치를 좌우로 흔들며 양쪽에 달린 종을 쉴 새 없이 때릴 것이다. 그럼 나는 장인 선생을 잡아 던지든가 짜증을 내며 일어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다행히 자명종을 던지는 일은 없었고, 더 다행히 바로 눈이 떠졌다. 눈을 뜬다기보다 자명종에게 얻어맞으면서 일어난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이렇게 짜증 나고, 집요하고, 듣기 싫고, 강력한 알람 소리를 만들려면 삼성전자는 더 노력해야 한다.) 그 덕분에 변덕스러운 아침잠도 괜찮아질 조짐이 보였고, 게으름뱅이라고 스스로를 탓하던 버릇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더 듣기 싫은 멜로디를 찾아 설정하고, 더 높게 볼륨을 맞추던 스마트폰보다 단 한 가지 기능에만 집중한 이 자명종이 나를 훨씬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늦잠을 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설정한 시간에 일어나려 매일 더, 더, 더 다양한 기능과 애플리케이션들을 이용해 나를 몰아붙였는데도 못 일어나는 병신 게으름뱅이. 내일은 더 몰아붙여서 꼭 제시간에 일어나자!’ 그렇게 10시에 일어나면 본전. 못 일어나면 또다시 스스로를 탓했다. 그건 상사의 갈굼보다 더 곤욕이다.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바보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런데 자명종은 더, 더, 더 할 것도 없다. 할 수도 없고. 나를 흔들어 깨우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존재하니까 말이다. 



   강원도를 오기 전,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도 스마트폰과 비슷했다. ‘저 사람은 재능이든, 노력이든, 정이든, 사랑이든 아니면 그냥 심심풀이 대화 상대든 나에게 바라는 게 분명히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그걸 만족시키기 위해 더, 더, 더 애를 썼다. 처음엔 한 칸의 볼륨만으로 상대를 만족시켰다면 다음엔 두 칸, 그다음엔 세 칸. 그러다 모든 볼륨을 다 쏟아 냈는데도 반응 없이 코만 골고 있으면 어쩌지. 그 불안은 항상 자존감을 인질로 삼아 나를 협박했다. 협박은 일상 곳곳에서 펼쳐졌다. 회사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이 나에게 바라는 역량을 채워주기 위해. 지인들과 자리에선 다음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사회에서 최소한의 쓸모를 가진 사람으로 남고 싶어 무던히 남을 위해왔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사회 또는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돼 버릴 거란 두려움이 스스로를 짓눌렀던 것이다.



   자명종처럼 존재만으로, 본연의 모습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맞는 건데. 왜 더 많은 것을 주지 않으면 네가 나를 떠나갈 거라 생각하며 두려워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떠나가면 왜 내 탓만 했을까. 나는 사실 한가지 자아밖에 없는 사람인데, 쓸모없을 애플리케이션을 잔뜩 깔 듯 맞지도 않는 자아를 잔뜩 만들어서 상대를 만족시키려 했을까. 자명종 하나면 충분한데, 왜 스마트폰 같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 그래서 그토록 상대의 말 한마디에 휘어 잡혀 흔들린 거겠지. 



   괴팍한 알람 소리에 부스스 눈을 뜨며, 난생처음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놈에 자명종이 부러웠다. 



   오늘은 9시 반에 일어났다. 만약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VOD로 올라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을 다 보고 잤다면 또다시 일찍 일어나지 못했을 거다. 뒤 내용이 궁금했지만 스마트폰을 딱! 꺼야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선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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