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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고 Sep 28. 2023

고향 - 1

비와 햇빛

   눈을 뜬 건 새벽 5시 50분이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비가 창문을 타닥타닥 두드리는 통에 맞춰 놓은 알람보다 10분 일찍 눈을 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곧장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람에 올라탄 빗줄기가 쏜살같이 얼굴을 강타했다. 얼른 창문을 닫고 주방으로 가서 제일 큰 그릇에 시리얼과 프로틴을 가득 담고 냉장고로 갔다. 어기적, 어기적. 느릿느릿 우유를 붓고 다시 주방으로 가서 완벽한 탄단지가 혼합된 그릇에 숟가락을 꽂았다. 아차, 아차. 다시 냉장고로 가서 아몬드 몇 알을 톡톡 털어 넣은 다음 소파에 앉아 빠릿빠릿 입에 부었다. 삽시간에 비워진 그릇을 양손에 들고 어젯밤 미리 싸 둔 여행 가방을 멍하니 지켜봤다. 빗소리는 점점 거세지는 눈치였고, 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 부산으로 가는 첫차는 오전 7시 20분이었다. 6시 30분까지 씻고, 옷 입고, 안 챙긴 것 없나 확인한 다음 여유롭게 40분에 출발하면 7시 5분에는 터미널에 도착할 터였다. 화장실 한번 갔다가 물을 사는 사이에 버스가 승차장에 들어오면 완벽했다. 차편은 미리 예매했지만, 예고 없던 비 때문에 괜히 모든 계획이 틀어진 것만 같아 기분이 푹푹 꺼졌다. 잠은 덜 깨고, 몸은 무겁고. 그래도 엄마 아빠 보려면 움직여야지. 



   강릉에서 부산으로 가는 해안 길엔 비가 내렸지만, 저 먼바다 위론 햇빛이 비췄다.



   먹구름만 가득한 하늘을 지나, 먹구름과 흰구름이 정신없이 뒤엉킨 하늘을 또 한 번 지나면, 쭉 잡아당긴 솜사탕 같은 흰구름 조각들이 하늘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얇게 펴진 그 조각구름들 사이로 은은한 태양 빛이 수십 줄기로 갈라져 바다에 떨어졌다. 마치 하늘과 땅을 지탱하는 금빛 기둥 같았다. 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며 동해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나 한쪽에서 10년 가까이 살았고, 다른 한쪽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사를 한 이유는 집안이 많이, 아주 많이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에서 나왔을 때, 엄마와 아빠가 달빛만이 희미하게 비추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던 모습만 기억한다. 그 크고, 유명했던 우리 식당이 정리되는 과정은 기억에 없다. 얼마나 빠르게 무너졌으면. 정신을 차려보니 좁은 골목을 들어와서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와야 있는 허름한 건물 3층에서 이삿짐을 풀고 있었다. 크기는 예전 집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방 2개 딸린 집이었다. 당연히 한 방은 누나의 것.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잠을 잤다. 



   행정구역상 같은 범일동이지만 이전에 살던 곳과 이사한 곳의 분위기는 달랐다. 이전에 살던 곳의 친구, 형, 동생들은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가득했고, 면면들이 훤칠하면서도 웃음기와 장난기가 가득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아이들은 사설 유치원을 다녔고, 아파트 아니면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런데 이사한 곳의 동갑, 형, 동생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무서웠다. 초등학교 고학년 형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담배를 골목에서 돌려 폈고, 학교가 끝나면 오락실과 PC방을 돌아다니며 삥을 뜯었다. 웃긴 게 삥뜯은 돈을 그들보다 더 고학년 형들에게 다시 삥뜯겼다. 왜 이렇게 잘 아느냐고 물으신다면 어쩌다 나도 그들 무리에 속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결국 초등학생들이다. 동네에서 깡통 차기나 경찰과 도둑, 축구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겠지. 다행히 형들은 담배를 권하지도, 삥뜯는 데 동참하라 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자신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풍겼는지 그저 궁금해하면서 잘해줬던 기억만 난다. 다만, 엄마가 병원 가라고 주던 돈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빼앗고, 아빠 호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훔쳐 오라고 시켰다.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고, 형들도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사실 이건 진짜 진짜 비밀인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특수반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 심하게 말을 더듬었고, 한글도 떼지 못했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들의 맞벌이에 초등학교 동안 학원은 고사하고 공부나 시험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남자만이 득실거리는 부산중학교로 진학했다. 온 동네를 누비며 놀기만 했던 놈이 덜컥 중학교에 올라가니 모든 게 낯설었다. 우선 교복을 입어야 했고 생판 모르는 또래 남자들이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시험은 또 왜 그렇게 자주 보는지. 그래도 의리 하나는 기가 막혀서 친구들을 위해 전교 등수 가장 밑바닥을 단단히 지켰다. 그러다 집안 사정도 어느 정도 괜찮아져 학원이란 곳을 가게 됐고, 그곳에서 옆 학교 여학생들과 옆옆 학교 여학생들을 알게 됐다. 그때 나이 14세. 중2이자 사춘기에 돌입한 나는 여자애들이 공부 잘하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빠르게 캐치했다. 그래서 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전교 17등, 반에서 2등, 평균 점수 98.1로 마무리했다. 엄마는 놀랐고 아빠는 당황했으며, 누나는 괴성을 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가 눈을 씻고 돌아와 성적표를 다시 확인했다. 학원 선생님들은 피자 파티를 열었고, 내 앞 테이블에 앉아 피클을 건내주던 옆옆옆 학교 중3 누나와 첫 연애를 시작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무슨 말씀! 사춘기는 아름다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성적은 크게 변동이 없었다. 사는 곳은 여전히 할렘이었지만, 학교에선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넘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일명 일진으로 불리던 친구들도 만화나 뉴스에서 보던 인간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름대로 의리 있고, 대부분이 꿈을 위해 노력하는 소년이었다. 그 중에선 개그맨 뺨치게 웃기는 놈과 정의를 위해서만 싸운다는 이상한 놈도 있었다. 고3 때는 일진이고 일등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어깨동무라도 한 것처럼 하나가 돼서 웃고, 떠들고,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그 무렵 나는 당당하게 영화감독이 되겠노라 선언했다. 나의 내신 성적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담임 선생님은 분통을 터트렸고, 친구들은 네가 무슨 영화감독이냐며 놀렸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실기 연습을 도와줬다. 신기했던 건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마치 ‘이제야 우리 집안에서 예술가가 나오는구나’라는 표정으로 나의 꿈을 이해해 줬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대대로 예술가의 피가 흘렀는데, 시대를 잘못 만나 지금까지 빛을 못 봤단다. 그 말에 근거로 본인이 어릴 적 예술단에서 노래했다고 했고, 어김없이 아빠를 만나 꿈을 못 펼쳤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교사였던 외할아버지가 예술단에 들어간 엄마를 가만두고 봤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살다 보면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때 깨우쳤다. 아무튼 집안 사정상 서울에 있는 대학은 힘들었고, 한강 밑으로 가장 유명하다고 소문난 부산의 모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거의 매일 취한 상태로 1학년을 보냈고, 휴학과 동시에 알바를 시작했다. 다시 복학을 했고, 다시 휴학을 반복했다. 그사이 독립잡지를 냈고, 웹매거진에서 일하며 부산 구석구석을 누볐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자리에 불려갔다. 그러다 독립잡지도, 웹매거진도 대학생의 취기 어린 도전 정도로 끝나버렸다. 고장 난 나침반을 가진 뱃사공처럼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매일 시내로 나가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클럽을 전전하며 사고를 처대는 통에 어느 가게는 내가 들어서자마자 나가라며 몸을 밀쳤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아무런 의욕도, 꿈도 없이 살다 결국 미루고 미루던 군대로 도망쳤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부터 갓 태어난 기린처럼 한 발짝, 한 발짝 바들바들 떨며 조금씩 일을 찾아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을 거쳐 강원도까지 와있었다. 



   그 모든 기억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는 고요했다. 부산의 추억들이 머리를 기댄 창문에 생겼다 사라짐을 반복하는 입김처럼 느리게 점멸하며 머리를 스쳤다. 화장실 가던 그날 밤과 무서워서 부끄러운 행동까지 했던 그 동네, 당황스러운 성적 향상 비결과 행복했던 금성고등학교 3학년 2반 풍경, 사회의 쓴맛을 알아버린 취기 어린 도전들과 방황했던 흑역사들까지. 그 수많은 잔상 중에서 유난히 날카롭고 어두운 기억들만 도드라졌다. 생각해보면 몽글몽글, 파스텔 톤의 밝고 예쁜 과거도 많았는데 언제나 모나고 못난 것들만 삐쭉하고 먼저 고개를 내민다.



   추억이나 기억도 먹구름 너머에 있는 저 햇빛 같다는 생각을, 강원도를 벗어나고 있던 버스 안에서 했다. 어느 곳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는지에 따라 지금 이 순간이 비가 내리는 곳이 될 수도 있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산에 도착하면 부모님과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웹매거진을 하며 친해진 친구들도 만난다. 그들과 부산에서 나누었던 모든 추억을 되짚으며 조금은 먼 기억 속에 있을, 그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나눠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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