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의 추억- 돌다리 두들기다가 갈 길 잃은 한국 교육

내가 수능 만점 받지 못한 이유. 불평불만을 가져야 성장할 수 있다.

수능 시험은 돌다리 두들기기 대회인가?



잊어버리기 전에 내가 9년 전 경험한 수능 이야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실수만 아니었으면 시험 날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시험을 볼 때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돌다리를 두들겨보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종종 기본적인 문제를 틀리는 것이다. 2014년 수능에서 나는 두 문제를 틀렸는데, 영어 2점과 수학 3점짜리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쉬운 수능이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배점이 낮은 두 문제만 틀리고 나머지를 다 맞힌 사람은 흔치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틀린 문제를 다시 찾아봤다.


2014학년도 수학 A형 25번 문제. 가장 쉽다고 하는 단답형 두 번째 쪽 문제다.


미분해서 1을 대입하면 0이 나와야 하니까 a=18, M=4다. 그래서 정답은 22다. 그런데 나는 멍청하게도 a와 M을 구해놓고 둘을 더하지 않고 M을 답하면 되는 줄 알고 4라고 마킹했다. 내 기억에는 수능 시험 당일에 편두통이 있었다. 평소의 컨디션이었다면 틀리지 않았을 것 같다. 만일 풀이과정을 밝혀서 쓰는 유형이었다면, 답을 잘못 적어냈어도 부분점수는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시험에서 철저한 검산과 집중력을 다 하지 않은 내 결함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험에 대해 불평할 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험이 좋은 시험인지는 여전히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영어 문제도 희한한 이유로 틀렸다. 2014학년도 영어 B형 41번과 42번 문제. 두 문제는 하나의 지문을 읽고 푸는 유형의 문제다. 통상 앞 문제는 쉽고, 뒤 문제는 어렵다. 41번은 가장 쉽다고 하는 제목 추론 유형이고 42번은 가장 어렵다고 하는 빈칸 추론 유형이다. 이제 알아챘을 것이다. 나는 41번을 틀리고 42번을 맞혔다. 41번을 틀린 이유? 나는 글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선지의 표현들이 모두 제목으로 적절하지 않아보였다. 제목 정하기는 원래 브런치 글쓰기 할때도 항상 어렵다. 문제 풀이의 핵심은 틀린 말이 있으면 안되고,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지엽적이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라는 W&Whale의 <R.P.G. Shine>이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수능 날에 내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불필요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선명한 선지를 두고 좀 더 흥미로워 보이는 선택지를 고르는 참사가 벌어졌다.


정답 = (4번) Connected yet Detached in Virtuality

오답 = (1번) Plug In and Log On: Farewell to Loneliness

(5번) Explore the Net, Go Beyond Reality


그 사고과정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그냥 1번이나 5번 선지의 도발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 영화 김씨표류기의 정려원 배우가 떠올랐던 기억은 난다. 소위 히키코모리처럼 인터넷에 빠져서 면대면 상호작용을 거부하고 인간성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beyond reality라는 말이 현실을 넘어선다는 뜻일텐데, 역설적으로 망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표현하기에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글의 저자가 그렇게 하라고 권유한 것은 아니지만, 5번의 명령형 어투가 어쩌면 반어적으로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번 선지도 마치 은둔형 외톨이가 컴퓨터를 켜면서 '이제 외롭지 않아'라고 말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낯설게 하고 오히려 역설적인 경각심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이 책 절대 구매하지 마세요"라는 반어적인 제목의 책이나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시험장에서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후배 여러분은 시험장에서 절대 이런 망상을 하면 안된다. 고민하지 말고 4번을 골라야 한다. 가상 속에서 연결되지만 떨어져 있다는 것. 이 주제를 있는 그대로 서술한 정직하고 선명한 답이니까. 대부분의 정답은 지루하다.


사실 요즘 브런치 제목이나 유튜브 썸네일을 생각하면 도발적인 낚시성 제목들이 남발된다. 수험생으로서 내 선택이 틀렸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고 문제 오류도 아니지만,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적절한 제목'이란 걸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건데? 이렇게 무미건조한 제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을지 나는 의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런 문제 풀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해진 제목들 중에 가장 선명하고 오류 없는 선지를 고르라고 시키는 것보다, 각자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해 글을 써보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도발적인 제목을 만들어 보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평생 선지 고르는 공부만 시키다가 어느 순간 창의력을 발휘하라고 요구하는 게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하다.


30살이 다 되어서 수능을 복기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돌이켜보니 성인이 되자마자 우리나라 교육에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중고생 시절, 매사에 불평 불만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에 대해 후회는 없다. 체벌이 많았고, 선후배 간 기합을 주는 문화도 있었다. 아무리 긍정적인 가치관이 좋다고 해도, 부당한 제도와 억압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시궁창같은 현실에서도 내 삶은 의미가 있고, 불평 불만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내 삶이 소중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험 문제 그까짓 거 틀리면 뭐 어떤가. 출제자의 뇌피셜, 대한민국 교육의 인재상과 내 취향이 안 맞았던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인재상은 바뀐다.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가 올 거라고 믿는다.


사실 내가 맞힌 많은 정답들 중에도, 객관식 선택형이라는 구조를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부적절한 문제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냥 맞히고 넘어갔다는 이유로 그 문제들은 잊혀지고 만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고민하고 창작의 고통 끝에 써낸 글, 논문, 보고서들은 아무리 허접하더라도 대부분 머리속에 남아있다. 공부는 단지 맞고 틀리고의 결과나 성적이 아니라 자기성장과 과정에 집중해야 진가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나는 수능 시험장에서 충분히 꼼꼼하지 못했고, 실수로 두 문제를 틀렸다. 내가 틀린 문제들은 전혀 오류가 아니지만, 사실 따져보면 출제자들 스스로도 돌다리를 제대로 두들겨보지 않는 것 같다. 수능에서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아홉 번이나 출제오류가 인정되었고, 비공식적인 오류 논란이 있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문과 과목 중에서는 04년도 언어 영역의 '미궁의 문' 문제, 14학년도 세계지리 총생산 문제, 15학년도 영어 %p 문제, 17학년도 한국사 시일야방성대곡 문제가 있고, 17학년도 국어에서 콰인의 총체주의 지문 오류 논란이 있고, 19학년도 국어에서 가능세계 문제 오류 논란이 있고, 21학년도 정치와 법에서 "갑국과 을국은 각각 전형적인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하나이다"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실수하지 않는 게 유일한 실력은 아니다. 시험이란 꼭 완벽한 출제자와 어리석은 응시자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받는 구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출제자와 불완전한 응시자가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시험에서는 이렇게 유치한 수준의 출제오류 논란을 예방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시험 당일의 컨디션으로 결정되는 것도 문제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소논문을 작성한다든지, 시험 횟수를 늘려서 기회가 자주 돌아오도록 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사실 이미 석사, 박사 교육에서는 그러한 시스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대로 차용할 수는 없겠지만, 대입 수험생 역시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고 시험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이브의 <Kitsch>에서 "It's our time"이라는 도입부 가사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단지 우리가 컴백했다 라기보다는, Z 세대와 새로운 가치관이 세상에 데뷔하면서 구세대의 관념에 선전포고하는듯한 심오한 의미가 느껴졌다. 나 역시 기성 세대의 일원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받은 경험은 거의 없지만, 적어도 미래 세대에게는 새로운 시험과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정해진 글에 빈칸을 채우는 문제를 잘 맞히는 아이보다, 백지의 종이에 새로운 글을 만들고 창작할 수 있는 인재가 더 필요한 건 아닐까. 돌다리 잘 두들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험한 시냇물에 직접 돌다리를 만들고 때로는 미지를 향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인재도 앞으로는 더 많이 필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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