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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멀어져간다: 김광석이 부르는 시간의 여운

청춘과 이별의 순간을 담담히 그려내는 따뜻한 노래

서른 즈음에 by 김광석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 글은 노래 가사를 선정해 하나의 사사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작사가의 원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으니,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원곡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I. 청춘이 머물러 있다고 믿었던 시절

- [가사가 탄생한 문화적 맥락과 그 속에 담긴 시대적 감수성]


또 하루 멀어져 간다(가사 1행)라는 첫 구절은 시간이 저무는 장면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 곡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청취자들이 청춘은 영원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사회적으로 청년 세대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던 시기였음에도, 노래는 더딘 성취와 반복되는 상실감을 가감 없이 담아냈습니다. 30대 전후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그려낸 이 가사는, 한 시대가 원하는 성공과 이상이 실제 삶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조용히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는 고전적 관념과 현대적 삶의 불확실성이 부딪히는 흐름이 존재합니다. 공자의 “삼십이립” 구절에 담긴 의미는 이젠 삶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기대감을 상징하지만, 막상 그 나이에 다다르면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가사 중간부)라고 고백하듯 이미 흩어져버린 열정을 체감하게 됩니다. 이는 보편적이면서도 시대적인 감수성을 관통하며, 청춘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II. 시간과 이별이 반복되는 노랫말

- [중심 주제와 상징, 은유가 만드는 깊은 울림]


가사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 상징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가사 5행)라는 문장은 하루, 혹은 청춘이라는 이름의 시간대가 계속해서 손끝에서 흩어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소멸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히 만들어주는 표현이 바로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가사 2행)이라는 구절입니다. 담배 연기가 허공에서 사라지듯, 시간을 붙잡지 못하고 보내버리는 화자의 무력감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또한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사 후렴부)라는 문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상실까지도 이별이라는 단어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대개 사랑의 이별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반복되는 하루와의 작별, 더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의 결별 등 인생 자체가 작은 이별들의 연속임을 통찰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 대목에서,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의 시 구절, "모두가 한창 피는 장미를 꺾을 때다"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시집 『Hesperides』, 1648) 역시 생각납니다. 장미를 꺾듯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조언은, 언젠가 시들어갈 청춘의 가치를 일깨우는 노랫말과 통합니다. 시간의 허무를 토로하는 대신, 흩어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가꾸고 껴안아야 한다는 역설적 메시지가 이 가사의 밑바탕과 만나 깊은 인상을 줍니다.


III. 운율과 언어적 장치가 빚어내는 잔잔한 울림

- [가사 속 반복과 대구, 그리고 리듬감이 자아내는 미묘한 정서]


이 곡은 단순한 멜로디에 실린 시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합니다. 반복되는 후렴과 대구법이 만들어내는 운율적 리듬이 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예컨대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라는 구절에서 거의 동일한 문장을 이어붙여, 듣는 이를 노랫말의 정서에 몰입하게 만드는 리듬이 살아납니다. 또한 점점 더 멀어져 간다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처럼 유사 어구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구조는, 마치 파도처럼 되풀이되는 감정의 흐름을 강조합니다.

가사 중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이라는 은유적 표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현실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일상의 언어로 포착해 한 편의 짧은 시처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익숙함 속에서 탄생한 참신한 비유가 곡 전반의 분위기를 한층 인상적으로 만듭니다.


IV. 화자의 시점과 서사가 전하는 담담한 고백

- [한 인물이 들려주는 내면 독백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흐름]


이 노래는 거창한 사건이나 서사를 갖추기보다는, 화자가 매일 경험하는 사소한 하루의 끝자락을 조용히 따라갑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가사 1행)라고 노래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가사에 등장하는 모든 시간적 사건은 과거에서 현재로, 혹은 현재에서 과거로 미끄러지듯 이어집니다. 내일을 기약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맞닥뜨린 감정이 곧 노래의 전부라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인생은 모두 하나의 무대 (All the world's a stage)(희곡 『As You Like It』, 1599~1600)라고 말한 대목과도 의미가 연결됩니다. 무대처럼 펼쳐지는 우리의 삶에서, 화자는 결코 영원할 것 같던 청춘과 사랑이 저물어가는 모습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이 노랫말은 단 한 명의 개인적 고백으로 시작하지만, 어느새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보편적 서사를 완성해냅니다.


V. 다른 예술·문학 작품과 만나는 순간

- [상호텍스트성이 가져오는 해석의 확장]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가사 중간부)라는 구절은 한국 현대시에서 최영미 작가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가 이제 잔치는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거처로 흩어진다라는 정서를 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청춘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허무가 이 노랫말과 어딘가 닮아 있습니다. 사랑이든 열정이든, 한때 화려했던 잔치가 끝나고 나면 그 공허함을 메울 길이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작품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사는 한 시대의 문학과 대중음악이 서로 대화하는 지점을 제시합니다. 작품 간의 상호텍스트성은 곧, 작가나 작사가를 넘어서는 공동의 문제—덧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그것을 붙잡지 못하는 인간의 아쉬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에 더해, 서양 문학 속 '카르페 디엠(Carpe Diem)' 정신도 이 가사를 이해하는 유용한 틀입니다. 삶의 유한함을 노래하면서도 역설적으로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VI. 매일 이별하며 배우는 삶의 실존적 물음

- [사회적·철학적 함의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흥미로운 통찰]


이 곡이 질문하는 본질적 문제는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탐색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별은 어떤 날엔 사랑, 다른 날엔 청춘이나 꿈, 혹은 과거의 장밋빛 기대일 때도 있습니다. 즉, 노래가 묘사하는 이별은 단순히 연인과의 결별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수많은 형태의 상실을 통칭하는 말처럼 보입니다.

이별과 공허는 불교적 무상(無常) 사상이나 서양 철학의 영원한 흐름 개념과도 이어집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것마저도 결국 소멸한다는 진리는, 비극적으로만 보이기 쉽지만, 또 하루 멀어져 간다를 노래하는 담담함 속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도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의지가 엿보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30대 혹은 그 무렵에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이 노래는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가사 후반부)라고 중얼대는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상실을 어떻게 견디고 오늘을 살아갈지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VII. 애수 어린 선율에 담긴 예술적 성취와 현재의 의미

- [가사가 전하는 정서가 어떻게 대중문화의 현재성과 연결되는지]


이 곡이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유는, 일상 언어로 보편적 진실을 절묘하게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라는 감정을 한 번쯤은 느끼지만,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내어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가사 마지막 후렴)는 단순한 넋두리처럼 들리지만, 잔잔한 선율을 타고 전해질 때 듣는 이를 묘하게 위로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이 노랫말은 과거와의 단절이나 단계적 성숙의 과정을 환기시키는 상징물이 됩니다. 자칫 침울해질 수 있는 주제를 담백하면서도 애절한 정서로 표현해낸 덕분에, 사람들은 가사 속 슬픔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이상하게 밝고 부드러운 회한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이 곡이 여러 세대를 거쳐 리메이크되고, 대중문화 전반에서 회자되는 점도 가사의 힘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대,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불러져도,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고 노래할 때면 누구나 한 번쯤 내 청춘은 어디까지 왔나 하고 되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간과 이별에 대한 담담한 고백을 덤덤하게 이어가는 이 곡은, 청취자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 머물며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선물합니다. 마지막 구절이 되풀이될 때면, 가사 속 이별의 이미지는 오히려 삶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다시금 북돋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도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강력한 매력, 그것이 바로 '서른 즈음에'가 지닌 예술적 성취이며 현대적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서른 즈음에, 김광석 (김광석 네번째, 1994, 트랙 6)의 가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더 다양한 시각을 원하신다면 아티스트 인터뷰나 다른 리뷰도 참고해보세요. 음악의 매력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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