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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스톤 Mar 04. 2023

[실크로드] 엄마와의 시간







난 20살 때 집을 나왔다. 그때의 감정상태로 비추어 보면 '가출'이란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가출하는 사람들의 보통의 심리는

<지긋지긋하다, 벗어나고 싶다, 이 공간에 절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다.>

쯤일 것이니 말이다.


나도 딱 그랬다. 그래서 20살 이후부터는 집을 떠나 내 멋대로 살았다. 그 당시 나는 집을 떠나며 나는 몇 가지를 다짐했다.


-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 절대 그리워 하지 않을 것


첫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지키며 살고있다. 두번째는 지키지 못했을 꺼라고 예상하고 있겠지만, 틀렸다. 난 집이 그립지 않다. 그리고 집을 떠난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젠 서울의 집이 내집인지, 부산의 집이 내집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절대 그리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산의 그 공간에서 단 하나 그리운 것이 있다면, 저녁에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이다.


고향집 거실에는 텔레비젼이 없었는데, 부모님이 텔레비젼을 안보셨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난 지금까지도 텔레비젼을 안보고, 오빠도 텔레비젼을 안본다고 한다.  저녁 시간에는 텔레비젼을 보는 대신, 엄마와 녹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귀미씨는 엄마였지만, 나에 대한 어떤것도 판단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고민도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공부가 힘들다는 이야기도 했고, 앞으로 세계일주를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럼 엄마도 어릴 적 꿈꿨던 모습이라든지, 지금 하고 싶은 일, 바라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시간들의 기억은 십년이 넘게 지났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다.










엄마는 어릴 적 꿈이 외교관이었단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서 신기한 것들도 많이 보고, 멋지게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럼 나는 왜 외교관이 안 되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라는 말을 몇번쯤 했는데, "왜 외교관이 안 되었냐?"는 질문에 몇개의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공부를 못해서 안되었다고 했다. 근데 그건 아닌거 같다. 엄마는 내가 아는 브로콜리 중 가장 똑똑한 브로콜리다. 두번째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안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좀 슬펐다. 세번째는 나를 만나기 위해 안되었다고 했다. 이 말은 둘러대는 것 같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무튼 학창시절 나의 꿈도 귀미씨를 따라 전부 <외교관>이라고 적었다. 지금의 내가 외교관이 되지 못한건 순전히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미씨한테는 첫번째 사립대학을 때려치며 학비를 줄 능력이 없었던 '당신탓'이라고 해서 엄마를 울린 적이있다.


난 참 못된 년이다.



아무튼 그때 우리 모녀는 텔레비젼을 안 보는 대신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들은 해도해도 질리지 않았다. 힘들었던 고3때도, 엄마는 나를 기다렸다가 거실에서 나와 반드시 이야기를 하고 잠들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그 길고 긴 이야기들의 흔적이 지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쉽다.  









카슈가르에서였다. 저녁시간, 난 언제나처럼 혼자 나와 사진을 정리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엄마는 밖을 보고 싶다며 공용로비에서 내가 사진을 정리하는 책상 앞에 털썩 걸터앉았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어스름한 저녁. 그땐 기도 시간이었나 보다.  숙소 바로 앞에는 카슈가르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 있었는데,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공용 로비의 경치가 무척 좋았지만, 1층에 양꼬치를 굽는 곳이 있어서 저녁시간에는 항상 양꼬치 냄새와 연기로 범벅이 되곤 했다. 엄마는 양꼬치 냄새가 우리가 앉은 테이블까지 침범하자 조용히 일어나 커튼을 내리고, 구멍 사이로 밖을 구경했다. 난 맥주가 다 떨어져 한 캔을 더 사러 다녀왔고, 엄마는 커튼을 내리고 남은 구멍사이로 뭔갈 구경한다고 열심이었다.


"엄마, 뭐봐?"

"선영아, 저것봐라. 저 아저씨는 매일 새벽에 제일 먼저 나와서 제일 늦게 들어간다."

"엄마는 그런것도 봐?"

"보인다 아니가."

"뭐 파는 아저씬데?"

"악세사리 같은거. 근데 잘 안팔리는 갑드라."

"엄마가 어떻게 아는데?"

"엄마가 여기 앉아서 볼 때 하나도 파는걸 못 봤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시작했다. 난 사진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엄마를 따라 밖을 보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제까지 카슈가르에 머물면서 본인이 관찰하며 정의내렸던 사실들을 나에게 말해주었고, 나는 엄마의 관찰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칭찬해 주었다.






우린 그날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 시간은 마치 십수년전 어느날 밤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그때와는 조금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의 저녁처럼 느껴졌다. 이야기의 주제는 역시 결혼과 전세, 대출금, 자동차 등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잊고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집을 가출한 후, 아쉽다고 느껴진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단 하나 그리운 시간이 있다면 엄마와 보냈던 저녁시간의 대화들이다.


여행은 참 좋다.


해가 지는 저녁 무렵.

이슬람 사원의 아잔 소리를 들으며, 1층에서 올라오는 양꼬치 냄새를 맡으며.

엄마와 15년 전으로 돌아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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