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날씨가 너무 좋아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우중충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안될것 같았다.
"저 조퇴하겠습니다."
"그래요."
세상쿨한 관리자는 왜 나가냐는 말도 없이 날 밖으로 내보내줬다. 이런 날엔 읍내지. 나 같은 촌년한테 서울 최고 읍내는 명동이지.
서울은 멋진 도시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고, 가장 큰 도시이자, 가장 현대적인 이 곳은 수만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한강과 그 옆으로 펼쳐진 푸른 공원과 아름다운 섬, 높은 빌딩과 낡은 주택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지은 화려한 대기업의 본사 건물들에 바보처럼 입 벌리고 감탄하다 한 걸음 잘못 들어선 골목길에서 '여기가 진짜 서울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리게 되는 빨간 벽돌에 기와집들. 여긴 진짜 옛 조선의 수도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경복궁과 그 낮고 오래된 궁궐 안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하늘을 찌르는 현대적인 마천루. 강남과 명동을 걸어다니면 마주치게 되는 무표정한 정장의 회사원들. 빌딩숲과 잘 어울리는 그들.
나는 오늘 남대문에서 내리기로 했다. 꽤 오랜기간 '가죽공예'라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데, 마침 만들고 있는 가방의 손잡이를 파는 곳이 남대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대문에 내린 김에 남대문 상가에서 악세사리 매장을 하는 언니를 찾아갔다.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얼굴의 서울 사람들과 나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고, 이젠 제법 많다. 사투리를 쓰는 나를 부끄러워 할 줄 알았던 이들은 실상 내가 사투리를 쓴다는 사실에 아무런 감정을 가지지 않았고, 간혹
"사투리가 쓰는 모습이 귀엽다."
라고 말해줬다. 사투리를 쓰는 내가 멋지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서울사람들이 좋아졌다가도 추석에 부산을 내려간다면
"시골 내려가?"
라고 말할땐 미워지기도 했다. 평일 오후 남대문에 찾아온 날 바라본 언니는 눈이 똥그래졌다가
"밖에 나가서 멋진데서 커피 마실래 남대문표 커피 마실래?"
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남대문 커피."
언닌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1분도 안되어 아저씨가 커피 두잔을 가지고 와선 설탕 시럽을 쭉쭉 짜서 넣고선 커피 두잔에 2천원을 받고 사라졌다. 난 매장 물건들을 할일없이 집적거리며 수다를 떨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음엔 점심에 와서 남대문에서 유명한 갈치조림을 먹자고 했다.
이 도시는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물론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돌이키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시간들도 있었다. 이렇게나 큰 공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느 것에도 위로받지 못해 베개에 코를 박고 숨죽여 울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운이 좋았고, 지금은 머릿속에 좋은것들만 잔뜩 남아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밤, 친구와 한강으로 걸어나와 편의점에서 라면 한그릇 먹고 뛰어다니다 고수부지에 앉아 강바람을 맞으며 별처럼 반짝이는 반대편 건물들을 보다 감동받았던 기억 같은 것.
나는 남대문에서 명동을 거쳐 을지로로 향했다. 요즘 핫하다는 을지로. 힙지로라지.
주말에 남편과 올만한 생맥주 집을 발견하고 이번 주말엔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길맥 한잔하고 기분 좋아질 남편을 생각하니 내 기분도 좋아졌다. 을지로와 동대문을 지나 대학로에 다다른 나는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대학로에는 우리집으로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
부산 촌년인 나는 서울로 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정말 서울로 왔을 땐 여기가 그리 좋았다. 돈도 없는 주제에 뭐가 좋은지 날이면 날마다 걸어다녔고, 천천히 걷다 마주하는 풍경에 눈가가 촉촉해질만큼 감동도 받았다.
서울살이 18년째.
아직도 나는 날씨 좋은 날 서울을 걸어다니며 감동받곤 한다.
여전히 이 도시가 그리 좋다.
아직 촌년인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