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연재 Dec 06. 2020

피에트 몬드리안의 '구성'처럼 변해버린 삶

네모난 세상

요즘은 피치 못하게 모든 생활 방식이 단조로워졌다. 수많은 도형 중 네모 같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점 강화되면서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인간관계도 더 가지치기가 되어간다. 저녁 9시만 되면 가차 없이 먹던 수저를 내려놓고 식당을 나와야 하고, 저녁 10시부터 본격적인 불금이 시작되었던 나날들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렇게 조용하고 단출한 연말을 보낸 적은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덕분에 주말이라 할거 없이 먹고 일만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야금야금 찌는 살은 덤.

이렇게 단순화되어 가는 라이프 패턴이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새 갑갑증이 밀려온다. 마치 피에트 몬드리안의 데 스틸 회화처럼 말이다.



데 스틸(De Stiljl)은 1917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이며 순수추상에 충실한 신조형주의 예술 철학을 지향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의 본질 적 요소는 단순한 형태의 순수함과 보편성으로부터 출발한다. 몬드리안을 비롯한 데 스틸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들은 수직과 수평의 직선과 원색, 검은색, 흰색만 사용하며 불필요한 재현적 요소들은 모두 차단했다.

 

 "... 이러한 새로운 조형적 발상은 외형의 특성, 다시 말하자면 자연적인 형태와 색상을 무시할 것이다. 반면에 형태와 색상의 추상화, 즉 곧은 선과 명료하게 정의된 원색을 통해 고유한 표현을 찾아야만 한다."  
-피에트 몬드리안



몬드리안이 그린 1908-1913년 <나무 연작>을 보면 불필요한 재현적인 요소를 생략하고자 하는 시도가 한눈에 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나무의 본질적 특성이 주는 리듬감, 조화와 질서를 창의적으로 표현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를 떠올려보자. 나뭇가지들은 자신의 바운더리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얼기설기 자라난다. 햇빛이 내리쬐는 방향으로 얼굴을 천천히 돌려 영양분이 한쪽으로 쏠리기도 한다. 한쪽은 나뭇가지와 푸르른 잎으로 우거지기도 하고 그 반대편은 민둥산처럼 숱이 적다.


몬드리안은 파리에서 유행하던 입체파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쥬 브라크의 작품 참고) 스타일에서 더 멀리 나아가  나무의 비 정형화된 가지들을 단칼에 베어내 납작하고 딱딱한 직선으로만 캔버스를 장식한다. 직선으로만 자라난 '구성'이라는 작품에는 나무의 '자연스러움'과 여성스러운 느낌은 온 데 간데없고 냉철하고 간결함만이 엿보인다.


신기하게도 직선을 그릴 때 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직선을 그리고 나면 그다음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대로 뻗어나가게 다음 선을 그렸다고 한다. 나뭇가지가 수학적 계산 없이 자라나는 듯, 몬드리안은 수직과 수평선만 사용하여 대상의 구상적 배열을 키운다. 수직선은 생기, 수평선은 평온함을 상징한다. 이 선들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균형감 있는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Evening, Red Tree’ (circa 1909)
Grey Tree’ (1911)


Apple Tree, Blossoming’ (1912)


Composition A’ (1920)


몬드리안이 바라본 세상은 단순하고 모던아트라는 말에 걸맞게 세련된 미를 선사한다.

특히 심심할 겨를 없이 심플함 속에서 원색의 각기 다른 크기와 위치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이 시각적 나태함을  완화시킨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네모난 박스에 갇혀 있는 듯한 시각적 제약이 갑갑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몬드리안이 숨도 쉬지 않고 그렸을 그 직선에 구멍을 하나 뚫어 그 속에서 곡선이 자라나게 하고 싶다.


몬드리안이 바라본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네모의 꿈>  가수: 화이트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중략)


작가의 이전글 #3 내비게이션이 차밭으로 인도하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