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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Mar 01. 2021

한 시대를 웃다가 가는 유에민쥔

웃는 얼굴만 존재하는 자화상

프리다 칼로, 앤디 워홀,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자화상을 많이 그린 작가이며 그들의 자화상이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그들의 얼굴의 특색은 각자의 스타일로 독보적이다. 자화상은 작가에 대한 신비감은 살짝 사라지는 대신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정보를 시각적으로나마 공유하며 그에 대한 상상의 실마리를 조금 더 주기 때문이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작품과 그것을 창작한 창작자 사이의 뚜렷한 상징적 이미지를 주는 것 같달까?

뱅크시 Banksy 같이 얼굴 없이 활동하는 화가도 있지만, 신비주의 마케팅은 요즘에도 그다지 통용되는 마케팅은 아닌 듯하다. 요즘은 자기 PR을 과하게 확성기로 소리쳐야 타인들에게는 귓속말로 겨우 들릴 정도니 말이다. 그만큼 셀프 PR 하는 이들이 넘쳐나니 그 레드 오션에서 헤엄치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처형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 유에민쥔의 작품을 보면 참 요즘 시대에 시의 적절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작품도 알리고 자신의 얼굴도 알리고. 일석이조 아닌가! 자아도취가 심한 작가라고도 여겨지지만 왠지 그가 나타낸 형상들을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통 자기 얼굴을 그리는 것이 어색할 법 한데, 유에 민쥔의 작품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유화라는 미술 도구에 앞서 본인 얼굴이 ‘미술의 재료’가 된다. 언뜻 보면 ‘자화상이 많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의 모든 작품들은 자화상이다. 평면 회화에서 조각 및 설치 미술 까지, 자신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또 복제한다.


아직 국내에서는 중국 미술 자체도 어색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배제된 미술이지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그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가웠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유에 민쥔의 웃는 얼굴이 필요한 시점으로 간절히 다가왔다. (중국에 대한 원망이 큰 시점이긴 하지만…) 그 웃음이 시니컬하던지 진실된 웃음인지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보고 개인에 따라 해석되는 부분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두운 전시장에 유에 민쥔의 생애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펼쳐지고. 쪼그려 앉아 불편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웃고 있는 그의 조각상 <무제, 2005>이 제일 처음 반긴다. 작가는 원래 전기 기술자였다. 대학 시절 유화를 배우긴 했지만 돈벌이는 기술자라는 길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89년 톄안먼 사건에 의해 그의 삶을 바꿔버렸다. 테안먼 사건은 중국 공산당 체계에 개혁을 일으키고자 광장엔 모인 대학생들에 의해 시위가 시작되어 점차 퍼져나갔다. 대규모 시위는 폭력사태로 번지며 수백 명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조차 모른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문서를 공식화하는데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국가적 사건은 유에 민쥔의 삶과 작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그는 이러한 거짓말 같은 현실을 직시하며 웃는 얼굴을 한 자신의 형상으로 이겨낸다.


<무제, 2005>


유에민쥔 작품 속 웃는 얼굴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가?

빨간 얼굴을 한 그의 복제된 얼굴들은 계속 웃음을 띠고 있다. 그가 표현한 웃음이란 무슨 뜻일까?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니고 계속 웃는다는 것은 불가하지 않는가?  

만약에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다양한 표정의 미소를 보여줬더라면 어떤 것이 ‘진짜 웃음’ 일지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을 cltr+V 하듯 한결같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저 웃음은 팔꿈치를 모서리에 갑자기 박으면 너무 아파서 울음보다 웃음이 나올 때처럼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섞인 반사작용처럼 여겨진다. 행복해서 웃기도 하지만 너무나 괴로워도 웃음이 난다. 거대한 장벽 같은 국가와 정치적 체제에 저항하지만 변화를 꾀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대한 자국민으로서의 당연한 반응이다.


유에 민쥔, 그는 말했다.


내 작업 속 웃음은 무력한 상태, 힘과 참여의 부제,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한 권리의 부제를 나타낸다.






짐승 같은 인간

개인의 표현과 의사 전달에 있어서 많은 제한이 있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환경을 고려한다면 바위에 달걀이라도 깨는 심정으로 얼마나 개인의 표현을 하고 싶을까? 팝 아트처럼 어떤 특정 유명인이나 정치인을 풍자하고자 얼굴을 껴 넣을 수도 없으며, 텍스트로 직접적인 메시지를 표출할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예술을 통해 평면 속 광대가 되어 블랙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유에 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은 앱을 통해 ‘무인 도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아도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작품 관람을 하기 좋았다. 로봇처럼 똑같은 표정들을 보니 유에 민쥔의 울부짖음이 왠지 안타깝게 느껴지며, 전시 속 빌린 ‘일소 개춘’이라는 말이 맘에 와 닿는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노장사상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고 말하며 꿈과 현실, 죽음과 삶, 선과 악의 경계선을 모두 부정하며 나타남과 사라짐, 삶과 죽음, 슬픔과 웃음이 하나로 연결된 곳, 낙원을 꿈꾼다. 얼었던 분위기가 엉뚱한 개그에 웃음이 나며 단번에 깨져 버리 듯 유에 민쥔은 그가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고 살아야 할 혼돈의 세상을 웃음이라는 무기로 온 세상을 봄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듯하다. 



예술가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과거의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믿는다면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과거를 부정하고 과거를 새롭게 이해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유에민쥔



유에민쥔의 모습. 사진=X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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