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 그대로의다이내믹함이느껴지는 작가의 초기 언어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불 Lee Bul 작가의 <시작> 전을 보고 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설치된 작품 때문에 깜짝 놀랐다. 원자 폭탄이 터진 듯 연기가 자욱한 모습으로 된 풍선이 보였다. 이 거대한 풍선 모뉴먼트 아랫부분에는 낙지처럼 여러 가지 선과 펌프가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은 그 펌프를 원할 때까지 눌러서 공기를 주입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작품에 개입하면서 이 괴물 같은 형상을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풍선은 빵빵하게 부풀어 굳게 서 있었다. 이 작품은 <히드라>이며 2년간 7개 도시를 순회했다. 현대 미술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기록되었으며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휴고보스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이 풍선 작품의 반대편을 보면 ‘무당인가?’할 정도로 기괴한 코스튬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데 당황스럽게 만든다. 살짝 선정적이고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이 이미지를 반대로 설치한 듯 보인다. 이 이미지 속 여성은 이불 자신이며,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부채춤 인형, 왕비, 여신, 게이샤, 무속인, 여자 레슬러 등 아시아 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한데 합쳐 놓은 작가의 모습이다. 순결의 상징인 백합을 손에 쥐고 있으며 성녀와 창녀, 어머니와 팜므파탈, 아줌마와 소녀, 공주와 신데렐라와 같은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와 통념을 자신의 신체로 다루며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전시 장 내부는 사진 촬영 불가로 전시에 대한 리뷰를 쓰는데 한계가 있지만, 한 마디로 표현해보면, 난 이불의 전시에서 ‘날 것의 울부짖음’을 보았다. 여태까지 본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불 작가의 2000년대 작품들이었다. 사이버틱한 신체 작품을 표현한 <사이보그>, <태양의 도시 2> 같은 파편화된 유리로 만든 설치 공간들, SF느낌의 건축적 언어들이 정제되고 세련된 느낌이라면, 이번 전시장에서 본 작품들은 이불 작가의 근본적 시각적 언어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1900년대의 작품들은 그 어느 누구도 선입견 없이 그냥 마음 편하게 바라만 볼 수 없는 작품들로, 한국미술의 기존의 규범을 모조리 거부한다. 어두 컴컴한 커다란 전시장에서는 이불의 유년 시절에 선보인 12개의 퍼포먼스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각오하고 들어가 보시라. 선입견을 전시장 밖에 내려놓고 보시라.
*<갈망>
첫 전시장에서 보였던 인간의 다리와 팔, 짐승의 꼬리와 촉수로 만들어진 기괴한 조각품. 그 조각품과 비슷하게 생긴 코스튬을 입은 작가가 야외에서 돌아다니며 설명할 수 없는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1988년 <갈망>이다. 미술관, 길거리, 벌판, 극장 등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이 무대이며 여성도 남성도 아닌 해괘망측한 형태의 소프트 조각 옷을 입은 모습이 너무나 소름이 돋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 한강에 난데없이 갑자기 괴물이 출몰 하 듯 이불은 즉흥적으로 춤을 추며 몸으로 말을 한다.
*<낙태>
<낙태> 1990년 퍼포먼스 작품 속에서는 돼지가 도살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듯, 알몸을 한 이불 작가 자신이 거꾸로 매달려있다. 일본 도키와자 극장에서 선보인 퍼포먼스이며 여성의 낙태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불합리성에 맞서 투쟁한다.
*<웃음>
1994년 작 <웃음>은 토론토 A스페이서에서 열린 퍼포먼스이며 4개의 파트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이불은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춘다. 마치 대한민국 초등학생이라면 거쳐야 하는 관문인 ‘꼭두각시’ 퍼포먼스를 연상 캐 한다. 한복 춤이 끝나고 탈의를 하여 하얀 슬립 속옷만 입은 채 풍선을 터질 때까지 부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는 갤러리 한 켠에 가서 모든 옷을 벗고, 정 가운데로 다시 돌아와 이제까지 있던 일들이 무효화되듯 미친 사람 마냥 박수 치며 웃더니 퍼포먼스가 끝이 난다. 갤러리에서 나체의 젊은 아시아 여성의 퍼포먼스는 정말이지 파격적이다.
이 퍼포먼스 작품 들 외에 다음 전시장으로 자릴 옮기면, 그녀가 했던 다른 퍼포먼스와 조각 작품들의 아카이브가 있다. 퍼포먼스 작품들을 상기시켜 주는 소품들과 사진과 핸드드로잉 기록들을 전시했기에 분절된 그 순간의 이미지들을 상상해볼 여지를 남긴다. 신체가 파편화되고 왜곡되는 충격적인 비주얼과 비위에 좋지 않을 법한 형체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역시도 이불 작가의 초기 언어, 초기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데 매우 주요한 요소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불 작가의 작품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었고, 작가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던 1990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증오, 불안, 반항과 희망이 상충하는 변곡점을 느껴볼 수 있었다.
상당히 무거운 전시인 것은 사실이나,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불 작가의 초기 작이며 퍼포먼스 아트, 해프닝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 작품들은 꼭 봐야 한다.
미술관 가기 전에 서울 시립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관람 티켓 예약 필수!! (코로나로 인한 인원 제한)
좋은 소식은 무료 전시라는 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