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말이 그냥 저냥 계속 끊임없이 많은 사람.

by 허연재

말을 평소에 아끼는 타입이기에 내 주변 사람들은 말이 그래도 어느 정도 많은 편이라 생각한다.

입에 거미줄을 친 듯 말이 없는 사람은 과묵해 보여 좋으나 같이 옆에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그래서 주로 듣는 역할을 자처하며 말이 좀 있는 친구와 지인들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재미없는 말을 알맹이 없이 그냥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뭘 이야기하려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특히 피곤할 때 만나면, 가만히 있어도 나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을 느낀다.

특히 학교에서 교수가 이런 경우에는, 상당히 좌뇌가 발달한 사람들이 유리하다. 그 쓸데없는 말들 속에 있는 데이터들을 분리수거 하들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주절주절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이 그걸 주워들을 거라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특히나 공감대가 별로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회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다. 학창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온 친구들은 그 수많은 불협화음이라는 난관들을 이겨내고 남은 이들이기에...)

말투는 상냥하고 친절하니 초반에는 듣다가 점차 나의 집중력에 한계가 온다.

처음에는 나의 집중력이 떨어지나 싶었다가, 몇 차례의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여자' (나와 만난 사람의 이름)가 오늘 아침에 나오다가 마룻바닥에 있는 물에 넘어져서 엉덩이를 찌어서 병원에 갔다가 나를 만나러 와야 했다는 상황이라고 해보자.

보통 말을 알맹이 있게 한다고 하면,


"내가 오늘 아침에 양상추를 씻었는데 싱크대 물에 갑자기 확 나와서 물이 마룻바닥에 튀었나 봐. 난 그것도 모르고 옷 갈아입고 늦었을까 봐 부랴부랴 차키 가지러 가는데 거길 밟아서 미끄러졌잖아. 우와 진짜 너무 아파 눈물이 나더라. 다행히 금 가거나 한건 없데, 몇 주 지나면 멍 빠질 거래"


이렇게 설명하는데 1-2분 정도 안에 난 사고를 이해하며 위로를 어느 정도 한 후, 요즘 근황 토크로 얘기가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말을 시작하는 지점부터 도달하는 지점까지 들려야 되는 중간 지점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내가 오늘 샐러드를 좀 잘 만들겠다고, 물을 틀었거든? 근데 그 수도꼭지가 예전부터 이상했는데 아직도 안 고치더니 결국 사고 치더라고. 물을 아무 생각 없이 틀었는데 사방으로 물이 발사되는 거야. 그거 다 닦고, 잘라놓은 과일이랑 넣어서 샐러드 부랴부랴 먹었지. 근데 이번에 산 딸기가 너무 맛있더라. 저번에 이마트에서 샀는데, 요즘 딸기 철이라 정말 꿀딸기더라고. 너도 요즘 딸기 먹어봤니?..... 다 먹고 뒷정리하고 시간 보니까 약속 시간 늦을 거 같더라고. 그래서 부랴부랴 이 옷을 챙겨다가 입었지. 아 근데 이 옷 저번에 아울렛에서 산거잖어. 너무 이쁘지 않니? 이거 오늘 딱 예쁘게 입고 우아하게 가력고 했는데, 바닥에 물기 있는 곳을 밟아버린 거야! 그냥 쿵 하고 엉덩이를 박았지. 난 물기를 다 닦았다고 생각했거든? 야 이제 노안이 왔는지 이제 그것도 다 안 보이나 봐...


아직 병원 간 이야기는 시작도 못했다.


근황 얘기를 시작할 때 즈음이면 지쳐서 집에 가고 싶어 진다. 여자와 1시간 이상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은 나의 대단한 인내심을 요했다. 하지만 그걸 이제 다 듣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예전에는 곰처럼 들어주다가, 이제는 화장실을 가버린다던지 말을 중단할 수 있는 환경으로 돌려버린다.

사실 화장실 가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천사 같은 누군가가 전화를 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물론 서로 에너지가 상응하는 사람과 만나면 이 여자의 대화는 생생하고 재밌는 대화로 비칠 수 있다.


요즘은 자기 PR이 강한 시대라고 생각해서인지 말도 많고 설명이 많아야 말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듣는 이는 무차별 폭격으로 점차 만남의 빈도를 줄여가기 시작한다.

자아도취에 빠져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듣는 이에 대한 배려가 쏙 빠진 모노로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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