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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츠루 Sep 05. 2020

내년을 위해서 참아보자, 얘들아.

지난주에 개학을 했어야 했다. 고3뿐만 아니라, 고1, 고2 모두 등교할 예정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경남 지역에는 집단 감염이나 깜깜이 감염은 없었기 때문에, 2학기는 '정상' 등교가 시작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게 바라고 있었다. 1학년 여섯 반, 2학년 아홉 반 수업에 들어갔던 나는 아직 반장, 부반장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누가 몇 반인지 당연히 기억하지 못한다. 평년 같았으면 한 달이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었다. 한 학기가 지난 다음에야 나는 누가 1학년인지, 누가 2학년인지 정도는 구분하게 되었다. 그러니 모두 등교하고 자주 교실로 가서 학생들을 눈에 익혀야 했다. 기억도 하고 살피기도 하고. 


본 것처럼, 알게 된 것처럼, 수도권에서 시작된 확산세 때문에 2학년들의 등교는 일주일 늦춰졌다. 그리고 개학을 하고 일주일이 지난 이번 주에야 2학년 학생들을 만났다. 들어가는 반마다 우선 방학은 잘 지냈느냐고 물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방학은 일주일이었다. 대답은 뻔하게도 '아니요.' 어쨌든 방학이 끝났으나 새 학기에 대해 소개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초등 3학년 우리 아들은 1학기에는 주 2회 학교에 갔는데, 지금은 2주에 3번, 그러니까 주 1.5회 등교다. 아들은 온순한 편이라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과제를 곧잘 해놓는 편이다. 물론, 모두 해놓지는 않아서 아내는 퇴근 후에 늘 아들과 앉아서 모자란 공부를 한다. 1학기 때보다 학교에 덜 가니, 집에서는 그만큼 챙겨야 할 게 많아졌다. 나는 아들이 낮동안 혼자 집에 있는 게 안쓰럽다. 하루에도 몇 번씩 휴직을 생각한다. 학교는 잘 안 나가도 진도는 잘 나간다. 곱셈을 배우더니 이제는 두 자릿수 곱하기 두 자릿수를 한다. 그리고 힘들어한다. 나눗셈도 배우는데, 나눗셈과 분수의 개념을 '온라인'으로 배워야 한다. 그게 잘 될 리 없으니 아내는 아들은 앉혀놓고 설명을 하고 또 한다. 


마스크는 약간 내리고 있는 학생이 보이면, 우선 마스크 잘 쓰자 이야기하고 수업을 시작한다. "동생들은 더 힘들 게 보내고 있어. 초등학생들은 2주에 3번 학교에 가고, 나눗셈 분수를 온라인 수업으로 듣고 있어. 초등학교 1, 2학년은 '우리 동네에 대해 알아보아요.' 같은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걸 온라인 수업으로만 하고 있어. 초등학생들 쉬는 시간은 5분이고, 그 5분도 투명막으로 가려진 자기 책상에 앉아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해야 해. 유치원생들은 코로나에 걸리면 죽는 줄 알아. 도대체 걸어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니 만큼 땀이 나도 마스크를 벗지 못해. 모두 어른들이 잘해야 하는데, 어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거 알아. 그래도 너희라도 너희 동생들을 위해 좀 애쓰자." 


어제 찾아온 졸업생 세 명은 신입생인데도, 엠티도 한 번 못 갔다고 하더라. 나는 허허 웃으며 덕분에 너희 술은 좀 덜 먹게 되어서 다행이구나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철이 없어서, 아니 알 거 다 알면서도 코로나 확산에 힘쓰는 어른들을 생각하게 된다. 원망하게 된다. 그들의 주장이 무엇이고, 어떤 이념과 신념에 몸과 마음을 바치든 상관치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 학생들이, 삶을 풍요롭게 살아야 할 아이들이 마스크에 갇혀서 딱 허락한 공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데 분노를 느낀다. 오로지 본인만 생각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어찌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내년을 위해 좀 참아보자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아이들만 참아서만 될 일이 아닌 게 너무나 확실하다. 그리고 아이들만 너무나 잘 참고 있다는 점은 더욱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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