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좋아하는 사람 중 자기 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늘 다듬고 벼려내어도 고만고만합니다. 게다가 같은 형식으로 쓰다보면 녹슬듯 배어나오는 매너리즘도 고역입니다.
Stanley Fish, 2011
문장수집가
저자 스탠리 피시는 영문학을 전공한 법률학자입니다. 하지만 문장에 페티쉬가 있습니다. 스스로 말합니다. "아버지가 배관공이라서 그런지, 문장이 새면 고치고 싶어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문장을 모으고 거기에서 독특한 통찰을 뽑아냅니다.
글의 기본단위는 문장이다.
피시는 그렇게 믿습니다. 문장의 가장 원초적 요소는 문장(sentence)이라고. 단어는 자체로 온전치 못하고 문단은 이미 복잡해져 버렸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단위가 되는 문장을 기법적으로 제대로 다룬다면 좋은 글 쓰기의 출발이 된다고 여깁니다. 왜냐면 문장은 단어와 단어 사이, 또는 주인공과 상황 간 관계이자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문장 소믈리에
따라서 피시는 문장 이해(apprehension), 문장의 음미(appreciation), 이를 통한 연습과 글쓰기 (craft)라는 사이클을 반복하면 글을 잘 쓰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책의 기본적 전개는 그가 수집한 문장을 분류하고 음미하는 내용입니다.
작법 연구
책의 반쯤은 그가 분류해두고 당장 쓸모있는 형식들에 대해 좋은 작가의 문장 하나씩을 뽑아 음미합니다. 종속형식(Subordinating Style), 병렬형(additive style), 풍자형(satiric style)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형식으로 추출이 가능한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쓰는 법에 대해 살펴봅니다.
책은 매우 재미납니다. 덕후같은 피시의 문장 수집벽으로 영롱한 샘플이 빼곡합니다. 게다가 문장 소믈리에다운 설명도 압권입니다. 새로운 창작에 준하는 음미와 찬사입니다. 그냥 넘어갈 좋은 감정을 낱낱이 들춰내 더 잘 느끼게 해줍니다.
반면 이쯤되면 독서의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도 듭니다. 좋은 문장을 해부했다고 좋은 문장을 잉태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형식은 내용의 그릇일 따름입니다. 물론 제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형식미가 받쳐줘야 더 멋진 글이 되지만, 초식만 열심히 배운다고 무공이 늘진 않겠지요. 내공이 필요합니다.
Inuit Points ★★★☆☆
결국 책은 피시 자신의 수집가적 세계관을 투영해둔듯 합니다. 반면, 한국 독자에겐 아쉬움이 남습니다. 콤마로 잇고, 분사가 소시지처럼 꿰어져,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미국 영어적 형식을 잘 다룬다면 작가적 멋짐이 폭발하겠지요. 하지만 번역한 책도 그러하듯, 우리말로 옮기다보면 이런 장식적, 영어식 표현은 어쩔수 없이 한글의 여러 문장으로 쪼개집니다. 그럼 문장이 단위가 되는 피시의 영어적 계산은 틀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술맛은 보되 술을 빚지는 못해서 아쉽습니다.
어쨌든 몇가지 형식미에 대한 맛은 봤으니 저는 만족합니다. 아, 제목이 열일한 부분도 있습니다. 무슨 뜻일지 궁금하고, 읽고 나면 고개 끄덕여지는 이쁜 제목입니다. 잘된 번역은 아닌데 역자가 정말 수고했겠다 싶습니다. 재미난 독서였고 별 셋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