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아. 이 제목을 보고 시선 한번 안 끌릴수 있을까요?
간단히 맛을 뵈드린다면, 1번 단편 '최미진은 어디로'는 이런 내용입니다.
주인공인 소설가 이기호는 중고나라에 어떤 사람이 소설 50권을 올려놓은 것을 발견한다. 소설들은 세가지로 분류해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이기호 자신의 소설은 3등급이고 게다가 윗등급 다섯권 사면 끼워주는 사은품이라고 되어 있다. 이에 이기호 소설가는 판매자에게 직거래를 신청하는데..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이기호, 2018
나머지 단편의 제목도 만만찮습니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오래전 김숙희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한정희와 나
모든 제목에 사람 이름이 들어갑니다. '권순찬 있잖아? 걔가 말야..' 식으로 불쑥 이야기를 걸어오는 느낌입니다. 권순찬이 누군지 가물가물하지만, '응 그래 순찬이가 어쨌다고?' 하며 반은 친숙하고 반은 생경한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됩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제목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막상 이야기는 제목에 나온 인물이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아예 대사 한마디의 흔적조차 없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현대소설의 익명화 장치인 P씨는, A군이로 시작하는 이야기와 사뭇 다릅니다.
앞에 예를 든 '최미진..' 이야기 주인공은 작가 이기호입니다. 실친인 소설가 박형서의 책에도 3등급을 매겨둔 깨알같은 장난도 있어 웃음 나옵니다.
심지어 작가 후기도 범상치 않습니다. 저자에게 실제로 발생한 이야기인지 픽션이 가해진건지 도통 알기 어렵습니다. 실화를 소설적 문체로 담고, 소설을 실화적 장치로 매어둔 탓이지요. 그러면서 솜씨좋게 주제의식을 툭툭 던집니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건, 환대입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고, 책 말미의 비평도 그러합니다. 환대를 모르고 읽어도 재미나지만, 환대라는 키워드를 마음에 두고 다시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작가가 왜 저리 간절히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려는지 어렴풋이 짚일듯도 합니다. 황순원 문학상도 탄 '한정희와 나'의 마지막 문장이 소설의 문제의식일겁니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Inuit Points ★★★★☆
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이 책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재능있는 작가들이 소설의 장르적 기법을 이렇게 진화시켜두고 있었구나. 내가 무심해서 몰랐구나.'
별 넷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