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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나온개세 Sep 06. 2022

11. 게으름을 좋아해서 갓생을 좇으려 해

고시 출신 1인세무사의 개업투쟁기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괜스레 마음 한 구석에 외롭다는 느낌이 불기도 하는. 선선한 공기와 청명한 하늘에 그냥 놀러가고 싶다!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오는. 불러주는 친구 하나 없이 집안에서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우울해지다가도 아 몰라! 나가자 하고 나가면 기분이 그냥 좋아지는 그런 계절이다. '가을'이라는 말을 들으면 하반기의 시작이자, 곧 겨울이며, 한 해가 또 금방 갔구나 난 올해 어떤 것을 했을까? 라는 질문이 당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열심히 살기를 강제로 외면한 한량의 일말의 죄의식이려나?




세무사 업무는 상반기에 주로 몰려 있기에 삐약이 개세의 현재 사무실 상황은 원천세를 제외하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증여세 컨설팅을 기반으로 한 신고 외에는 특별한 이슈가 없다. (물론 10월 되면 가결산 한번 해서 고객들께 올해 예상 상황을 브리핑 드리려 한다) 특별히 신경써야 할 업무가 없어서 일전에 올린대로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라고 말하고 양심이 무척이나 찔린다), 사실은 블로그 홍보나 고객들 방문 혹은 영업을 위한 업무에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심적부담이 있다. 그 심적부담을 살짝은 외면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거지! 하는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을까 하는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는 요즘이다. 오늘의 글은 사실 세무사업에 대한 고찰을 쓴다기보다는 자아탐구에 대한 글이 될 수도 있겠다. 원래 주제는 디지털노마드가 된 세무사였는데 이 주제는 내일로 미뤄야지. 






고등학교 때부터 스무살, 스물한살까지 나름대로의 방황기를 거치면서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초라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문자로 기록을 하려니 '두려움이 생겼다' 라는 표현으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묘사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첨언을 하자면, 과거의 눈부신 영광을 만든 것은 본인 스스로라는 자만심에 취해 스스로의 존재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는 오만한 착각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냥 게으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신승리만 하는. 현실에 대한 극복보다 현실의 눈을 감는게 보다 편하고 쉬우니까 자기 자신만 납득시켰던 그런 시기. 돌아보면 그 시절에는 하나님께 제발 3년만 이전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울면서 빌었던 듯 싶다. 그렇게 울 에너지로 무언가를 할 생각은 못한 채 그냥 현실에 대한 원망과 초라한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기 싫어 저건 내가 아니라고 내 스스로를 미워했던 시기. 자기 스스로 자기가 싫어서 옛날의 나로 가고 싶어하는 자기혐오의 감정은 너무나도 우울하고 무력감이 들면서 삶에 대한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정말, 다시는.




그렇기에 현실을 마주하고 인정한 후 맞서는 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에. 당시의 나와 또 가끔 힘든 시기를 맞는 현재의 나는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환상 혹은 변명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방패막으로 내세워 또 그럴듯한 모습들로 현재의 초라함을 포장하려 하거든. 본인 스스로가 하는 가스라이팅은 너무도 현실을 정당화하지 않는 수단으로 너무나도 적합하면서도 제일 쉬운 것인 이유는, 변화를 가장 적은 가짓수만 하면되니까. 그냥 현실이 이상한 것이다 라는 내 생각 그 하나만.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대며 하지 않음에 대한 이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버리려는 내 모습은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한 느낌에 오늘 아침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던 듯 싶다. 내 사무실이라는 자부심과 뿌듯함의 상징은 여전히 내게 설렘을 가져다주면서도, 나 혼자라는 사실은 가끔 너무 안락함과 루즈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빴던 상반기의 일정과 세무조사 및 전반적인 세무 업무에 대한 홀로서기가 조금 익숙해졌나 보다. 




내가 너무 루즈한 것이 아닌가? 나는 어제의 나보다 좀 더 나아졌는가? 나는 지금 뭘하고 있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지금까지는 전부 운이였고, 앞으로도 행운이 찾아온다는 보장이 없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막연한 불안이 슬슬 찾아오며 현재도 불안의 소용돌이가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다. 사실 현재만 직시해보자면 맡은 일에 대한 업무와 믿어주시는 고객님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입장에서 좀 더 도와드릴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되는데 생각이라는 놈은 참 무섭기도 한 놈이라 잠시 두려움과 의구심이 들때면 자꾸만 내 발목을 잡고 같이 빠져들며 마주해야 하는 세상에 대한 회피를 합리화시키려 한다.




본인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이 생각이란 놈의 뺨따귀를 후려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멱살을 잡고 끌어갈 수 있을테지만, 현재의 나는 너무나도 미지의 세계를 '표류'하고 있는 나무널판지와도 같아서 종종 부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만 같은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나의 확신에 힘을 부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갓생을 살고 싶다라는 욕망이 아주 분출되는 요즈음이라 자기 자신의 관리수단인 다이어리를 고르려 고군분투 중이다. 원래 열정에 기름붓기에서 출간하는 열기 다이어리가 이쁘면서도 동기부여 아주 팍팍 되고! 쓰기만 해도 뭔가 내가 하고 있구나 하는 자기 정신승리에 유용한 다이여리라 많이 썼는데, 코로나 시기 겸 어떤 사유인지 모르겠지만 단종이 되어버려 일단 대안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너무나도 내가 원하는 다이어린데 단종이 되고나니 사실 다이어리 제작을 위해 좀 알아보고 있긴 하다. (내년 1월 2월 3월 의 3개월 다이어리는 원하는 컨셉으로 한번 제작해서 사용해보고 싶다)




무튼, 아쉬운 대로 다이어리 제작을 하다가 그나마 조금 컨셉에 맞는 다이어리를 찾아서 이번 시즌은 구매한 다이어리로 버텨보려 하지만 만약 맘에 안들면 내가 꼭 제작해보아야지! 내가 안일하고 게을렀던 이유는 다이어리가 없어서야! 라는 괜스레 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대며 (타인이 보았을 떄는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는 다이어리가 굉장히 큰 동기부여가 되기에 그럴듯한 자기합리화라고 표현했다) 합리화하는 나인데, 제발 다시 한 번 불타오르는 강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이루고 싶다. 스스로가 게으른 삶을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갓생을 추구하는 아주 언밸런스한 이 해괴한 짝사랑이 언젠가는 스스로 부지런한 삶을 좋아하며 그래서 갓생을 추구하는 쌍방향이 되기를 바라며 언제나 파이팅이다. 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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