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몸부림
0. 개업초기 - 여유로운 고통의 시기
개업 초기에는 과도한 의욕과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개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며, 주변 누구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을지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소득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시간은 남아돌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어려움에 빠지기 일쑤다.
나 역시 개업 초기 만날 사람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여유로운 한가함이 주는 고통에 시달렸다.
회계사나 세무사를 네이버에 검색을 관련 블로그가 끊임없이 검색이 된다.
블로그 내용은 천편일률적인데, 거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소개글이다. 소개글에는 온갖 외부활동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위원, ~평가위원, 마을세무사 등등.
개업 선배들은 남산 위의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 화려한 경력으로 전문성을 어필하고 있었다.
이 것이 고객을 끌고 오는 비법인가?
대학교 졸업/공인회계사 합격/회계법인 근무 -> 3줄로 끝나는 이력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기회가 생기면 뭐든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다.
1. 조세심판원 국선심판청구대리인
국선변호사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국선심판청구대리인도 국선변호사 제도와 유사한 제도이다.
심판청구과정에서 세무대리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소액·영세납세자를 위해서 국선세무대리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15년 조세심판원에서 시범적으로 운영을 하기 위해서 지원자를 모집했는데, 운 좋게 선발되었다.
국선심판청구대리인으로 위촉은 되었지만, 시범적으로 운영되었던 시기이고, 조세심판원까지 다툼이 생길 경우에는 세무대리인을 선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나에게 배정되는 사건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멋진 위촉장과 위촉식 사진, 경력 한 줄은 추가할 수 있었다.
2. 강남세무서 영세납자지원단
나의 경력 쌓기 두 번째 프로젝트는 영세납세자지원단이었다.
영세납세자지원단은 경제적인 사정 등으로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하는 영세납세자가 세금에 대한 고민 없이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나눔 세무·회계사가 사업주기별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세금문제 해결을 도와드리는 제도이며, 회계사나 세무사의 재능기부를 통해서 무료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가까운 세무서인 강남세무서로 지원을 하였고, 2016년 5월부터 한 번의 연임을 하면서 2020년 5월 말까지 총 4년간 활동을 하였다.
영세납세자지원단은 한 달에 한 번 2시간을 세무서 내부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납세자들의 세무 상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도의 취지대로 세법 지식에 취약한 분들이 세무서를 방문하여 궁금한 것을 상담하는 것인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강남"세무서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부동산 세법이 굉장히 복잡하고 난잡해지던 시기였는데, 상담받으러 온 분들의 대다수가 강남세무서 근처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었다. 이분들의 주 관심사는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의 양도소득세와 증여세, 상속세가 대부분이었다. 주 관심사 자체가 제도의 취지와는 맞지 않았다.
상담 자체가 무료이다 보니, a에게 상담받은 내용을 b에게도 질문하고, c에게도 질문하는 경우도 많았고, 이전에 받았던 받은 답변과 조금 다른 내용이면 추궁하듯 그 이유를 묻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또한, 안 그래도 부동산 관련 세법이 복잡한데, 질문 수준도 높았고, 본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을 유도하기 위해서 이상한 방식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상담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고, 무료상담과 유료상담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유료 상담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데, 무료 상담은 본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의견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영세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봉사했던 4년간의 시간이 흘렀고, 나의 경력도 한 줄이 추가되었다.
3. 서울지방국세청 국선대리인
조세심팜원이 국선대리인 제도를 만들고 나서 국세청도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국선대리인이다. 국선대리인은 청구세액 5천만 원 이하의 과세전적부심사・이의신청・심사청구를 제기하는 영세납세자에게 세무대리인을 무료로 지원하는 제도인데, 심판청구만 대리할 수 있는 조세심판원보다는 업무배분이 많았다.
국선대리인 제도는 2019년에 시작되었고, 나는 조세심판원 국세대리인의 경력을 내세워 당당하게 지원을 하였는데, 이번에도 운 좋게 선발되었다. 국선대리인도 일 년에 4-5건 정도 사건이 배정되었고, 다른 봉사활동과 달리 사건마다 15만원의 보수를 지급 받았다.
사건이 배정되면 비대면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납세자를 사무실로 불러서 사실관계도 설명 듣고 자료도 확인하고 하였다. 나는 배정된 사건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
나에게 배정된 사건 중에 세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케이스도 있었지만, 법률상 다퉈볼 만한 사건에 대해서는 승부욕이 발동하였다. 승부욕이 발동된 사건의 승률이 좋았는데, 국세청이 국선대리인 제도를 운영하는 주최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선대리인의 주장에는 조금 더 귀 기울여서 들어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사전을 배정해 주는 담당 세무공무원도 필요로 하는 자료 등을 협조를 잘해주신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2019년부터 2022년, 총 4년간의 국선대리인 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사건을 배정해 주던 세무공무원 분에게 연락이 와서 그동안 열심히 활동을 해줘서 고맙다고 표창장 후보자로 올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개업 후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있어 보이는 이력 한 줄에 대해서 미련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빛나는 표창장을 졸업장으로 삼아 조세심판원 국선대리인 2년, 영세납세자지원단 4년, 서울지방국세청 국선대리인 4년 총 10년간 경력 쌓기를 마무리하였다.
국세청장 표창에 포상금을 기대했으나..
그냥 기념 벽시계 하나를 선물이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