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함에서 벗어나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심각할 게 하나도 없다

by 바나

매사 진지한 편인가요?

삶의 중압감에 짓눌려 무감각한 상태로 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세상을 조금 더 가볍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천성이 진지한 편입니다. 좋아하는 취미도 하나같이 진지한 것들이지요. 모든 태도에 양면성이 있듯, 진지한 성정 역시 긍정성과 부정성을 모두 안고 있습니다. 진지하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의미이므로, 자칫 생각에 매몰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중도를 잘 지켜야 하지요.



어린 시절에는 생각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큰 문제가 아닌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착 상태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곤 했지요. 물론 이런 좌충우돌이 무의미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행착오로부터 깊은 자각이 생기니까요. 다만 어떤 성향이든, 그 극단에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음을 아는 건 중요하지요.



제가 어린아이였던 80, 90년대 사회 분위기는 대체로 진지했습니다. 가벼운 웃음이나 유머를 터부시했지요. 희극인은 다른 연예인에 비해 가치 절하됐고, 애초에 자기비하가 개그의 소재로 쓰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당대 가장 인기 있었던 개그맨이 바보 캐릭터인 '영구'를 연기한 심형래였던 걸 떠올려보면, 쉽게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테지요.



경직된 사회 분위기의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긴 민주화 운동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정치적 긴장감이 남아 있었던 게 하나의 이유입니다. 더불어 개도국으로서 급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시기였기에 사람들은 웃음을 수용할 여유가 없었지요. 휴식이나 여유 속에서 피어나는 게 웃음이고 유머임을 감안한다면, 당대 사람들이 왜 그리도 웃음에 인색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진지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데다 타고난 성정까지 더해지니 저는 그야말로 재미없는 인간의 전형이 되어 버렸지요. 장난에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당시의 저를 누군들 편하게 느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만 나오지만, 20대의 저는 꽤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모든 가벼운 것들에 맞서 진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종의 '특별함'이라고 여겼습니다.



상대적인 우월감을 만끽하며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동안, 저는 스스로 고립되기를 자처했지요. 물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면의 깊은 고뇌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 결과 혼자 힘으로 긴 정신적 방황을 견뎌 내야만 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했지요. 실상은 많은 이들이 제 손을 잡아주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들 합니다. 극도로 진지한 태도가 바로 그런 인상을 자아내지요. 매사 진중한 사람들의 경직되고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은, 본인은 더없이 진지하겠지만 제3자의 눈에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러했듯 말이지요.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유머'입니다.



영적 스승 오쇼 라즈니쉬는 삶의 매 순간을 기쁨과 유머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실제 그의 강연에는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었는데, 대부분 유머 속에 날카로운 풍자와 깨달음이 담겨 있지요. 심각한 태도는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 뿐,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가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유머는 다르지요. 한바탕 웃고 나면 분위기가 환기되고, 웃음의 여운으로 말랑해진 가슴을 건드려 깨달음을 이끌어 내기 쉽습니다.



이처럼 웃음은 사람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킵니다. 억눌렸던 마음이나 경직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풀리도록 돕지요. 웃음은 동시에 전염성이 강합니다. 누군가의 미소를 보고 자연스레 따라 웃은 경험이 있으시지요? 어지간히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아기들의 웃음을 보고도 여전히 얼굴을 굳힐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 일상은 유머를 구사하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에는 너무도 바쁘고 복잡합니다.



직장에서 이런저런 서류를 작성하다가, 문득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으신가요? 무서울 만큼 굳은 얼굴을 한 사람이 거기에 있습니다. 물론 일터에서 나사 빠진 사람처럼 웃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잠깐 쉬는 때만큼은 크게 심호흡을 하거나, 굳은 얼굴을 펴고 의도적으로 한 번 웃어보면 어떤가요?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데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습니다.



매사 진지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태도에 여유가 생기고,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배어나왔지요. 무엇보다 실수를 할 때마다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난하던 습관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존재인 '나'를 인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타고난 진지함을 받아들이되 심각함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들여다보고, 사유를 즐기되 그 생각을 강요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토록 바라던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지요.




자리에 앉습니다.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손은 무릎 위에 놓습니다.

크게 심호흡합니다.

가쁜 숨이 안정될 때까지 호흡을 지켜보세요.

들-숨...날-숨...들-숨...날-숨...

코끝을 스치는 바람을 느껴 봅니다.

호흡이 점차 깊어집니다.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걸 바라보세요.

어떤 판단도 하지 말고, 그저 지켜봅니다.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다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한발 물러나 생각을 관망합니다.

고요가 점차 커져 갑니다.

고요 속에서 평온을 느껴보세요.

더 완전한,

더 깊은 평온이 깃듭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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