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조각 44

웃지 않을 용기

by 바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웃는다. 이때 웃음은 어색함과 겸연쩍음이 적절히 섞인 사회적인 표현 방식이다. 웃음에는 다양한 성격이 있다. '파안대소'처럼 순수하게 기뻐서 웃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웃긴 상황이 아닌데도 어색한 상황을 타개하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웃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왜 웃음을 선택할까? 웃음에 얽힌 속담을 보면 웃는 얼굴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습관적으로 웃곤 한다. 어린 날부터 웃는 낯으로 상대를 대하라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면서 직간접적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꾸짖는 말을 많이 들었다. 누구를 접대하는 것도 아닌데 평소에도 웃고 다니라니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인상을 쓰거나 무표정한 것보다야 기왕이면 웃는 낯이 보기에 더 좋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될 때 이야기다.


몸이 아프거나 에너지가 없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웃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표정을 조절하는 것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컨디션이 나쁠 때까지 상대를 위해 표정을 관리하라고 요구하는 게 과연 정당할까? 타인에게도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를 몰아붙여서 하는 모든 노력은 나의 에너지를 담보로 한다. 번아웃은 일로부터도 오지만 관계로부터 오는 경우가 더 많다. 관계 속에서 겪는 어려움들은 눈에 보이는 갈등만 있는 게 아니다. 매일 매 순간 애써 조절해야 하는 말과 행동 역시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일을 쉬고 있는 지금도 습관처럼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 무의식적인 반응이 때로는 몹시 피로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웃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가짜가 아닌, 진짜 웃음만 남길 용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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