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대 도서관 서고 구석: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50주년 기념 책자
학교 도서관의 묘미는 원하는 책 빌리러 가봤다가 혹 세네 개씩 더 달고 오는 법칙이다.
책장은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보니, 원하는 책 주변에 관련된 책들이 널려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이번엔 식민지 시절 한국의 사립대학에 대한 책을 빌리러 서고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길에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50년』(2011)를 봐버려서 연구실에 같이 데려왔다.
학술적으로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기념 책자가 어쩌다 이 먼 타지의 대학 도서관 서고에 있게 되었을까. 아마도 누군가가 도서 신청을 한 것 아닌가 싶은데, 누가 이 먼 타지의 대학 도서관에 이런 한국어 책을 도서 신청했으며, 도대체 어떤 이유를 대고 도서 신청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예상되는 내용은 교수진, 커리큘럼 변화 등에 대한 내용과 동문들의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추억팔이. '특권' 다 누리는 기득권 카르텔의 라떼는 소리에는 가치도 관심도 없고, 전자에 대한 내용만 좀 보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치기 시작하니 '전주O씨 OO공의 O째 딸 OO여사와 결혼' 같은 이력 나열해둔 교수 소개보다도 후자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 책자가 어디 경제학과 기념 책자가 아니라 인류학과 책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먼저 석사 99학번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조교수의 글. 조교수는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가 졸업 뒤 2년이 지나 미국으로 유학 길에 올랐다 (아마 스탠포드 박사과정).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그 과정에서 맞닦뜨린 시선(진학 만류, 면접관의 호기심 어린 시선 등)과 '돈이 안 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이 학업이 시작하고 이어가는 이유 (재미, 자유).
조 교수의 이야기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 과정에서 겪은 언어의 장벽, 그 과정에서 서울대에서 인류학을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조 교수의 유학 이야기는 언어 장벽 속 외로움과 그를 이겨내고 학위를 따낸 자신의 영웅적 이야기나, 그러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가엾은 자신과 그 어려움을 이겨낸 위대한 자신이 특권을 쟁취하고 누려야겠다는 류의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8년 뒤인 2019년 한겨레에 실린 그의 칼럼 「그들이 품고 온 세계」는 자신의 주장 하나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학생들을 학생 뿐 아니라 교수조차 수준이 낮다며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실은 그들 하나 하나가 제각기 한 세계를 품고 온 존재이며, 다른 학생들과 학교를 풍요롭게 만들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실은 조 교수가 미국 유학 시절에 대학 직원으로부터 들은 말인데, 그는 그 직원의 조언을 받고 영작 실력을 향상 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품고 온 세계에 호기심은커녕 무관심과 냉대, 심지어 조롱을 일삼는 경우를 최근의 뉴스에서 심심찮게 본다."
93학번 김윤지라는 분은 여느 동문처럼 인류학이 뭐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설명도 못 하겠는 곤란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직장 생활 중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숫자' '계산하는 실력'으로 사람을 명료하게 1등부터 서열짓는 경제학 쪽 분위기. 다양한 관점과 기준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가 통하지 않는 곳. 그는 박사 학위를 따고나서도 도저히 그 분위기에 동화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오히려 학부 시절 공부하거나 경험했던 인류학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되돌아본다. "인류학이란 학문이 사람들의 머리를 참으로 폭넓게,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헀던, 덜 했던 그런 학문의 울타리에 있는 사람들 사이...."
81학번 김정호라는 분은 사노맹 활동하다가 제적되어 그대로 고졸 상태로 군대를 갔다와 책방을 하다가 30대 후반이 다 되어 중국 유학 길에 올랐다.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10여 년. 중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마지막 박사과정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학부 85학번, 석사 09학번인 김희경이라는 분은 학부에서 인류학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채 졸업한 뒤, 낮은 학점을 고려해 언론에 몸담다가 돌고 돌아 다시 인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직업에서 비롯된 좌절감이 턱 밑까지 차올라 절절 매던 때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소통의 매개'를 자임하는 매체 내에서도 점점 더 다양한 목소리가 소통되지 못하는 현실, 주류 사회의 획일화된 가치를 확대 재생산 해내는 방식의 뉴스를 다루는 일에 한계를 절감하던 때였습니다. 금세 소멸되는 뉴스를 좇는 기자를 그만두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람살이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한지 직접 실천을 통해 깨닫고, 공부하고, 그것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나날이 커져갔습니다. 그 뒤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것은 아닌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제가 그 바람대로 살고 있더군요."
"26년 전 대학에 입학할 땐 스스로 선택한 전공과 그렇게 오래 멀어지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인류학을 다시 만나는 날이 오리라 상상도 못했지요. .... 당장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는 경험들도 열심히 추구하다보면 결국 점들을 잇듯 하나로 연결되어 자신의 길이 만들어진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 어렴풋하게 알 듯합니다. 제 경우 대학 시절에 가졌던 사회적 실천에 대한 관심, 기자의 경험, 인류학 공부가 결국은 통합되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으니까요.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인류학이 그 중심에 있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졌던 사회적 실천에 대한 관심,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 뒤 대학에 들어가 맞닦뜨린 교육 문제와 사회 문제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지고, 기자로서 사회 현실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그 뒤 돌고 돌아 교육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T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인류학이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커리큘럼 탓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