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노트_ 동쪽여행
16일, 동해 북쪽 마을 언덕에 자리 잡은 연필뮤지엄 ‘해당화' 주제의 카페에서 그림일기로 여행을 기록하는 박동식 작가를 만났다. 박 작가는 3박 4일간 묵호여행을 왔다고 한다. 막걸리학교 트레킹 클럽 일정을 마치고 뮤지엄을 방문한 허시명 교장 등과 활동하는 여행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이동하며 삶을 즐기는 유목민처럼 여행을 즐긴다는 의미일까요? 자칭 유목여행자로 칭하는 박 작가는 지난 연말에도 그림일기로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그림일기를 2권씩 내놓는다. 일기장 속에는 현장의 그림과 이동에서 발생하는 각종 영수증, 입장권, 현지 꽃 등도 같이 담았다.
카페는 창밖으로 논골담길과 묵호등대마을이 한눈에 펼쳐졌고, 풍경을 바라보는 박 작가는 붓과 여행용 수채화 물감을 활용해 연신 칠하고 비비며 행복한 모습으로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었다. 주제는 '해당화 곱게 핀 연필뮤지엄 카페에서 바라본 논골담길 마을'이다.
잠시 바라보다 나는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작가님 정말 멋집니다. 글에 그림까지…대단합니다.”
그러자 박 작가는 나를 알고 있다고 한다. 언제 만났던가 기억이 나질 않아 미안해하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꺼낸다. 7년 전 처음 드로잉을 배울 때의 그림과 그다음 해의 그림을 보여줬다. “나도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충분히 그릴 수 있습니다.”라며 나를 위로했다.
작가는 그림 가장자리에 보일까 말까 작은 글씨로 적는다.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벽화 속에 스며든 묵호의 옛이야기가 들려온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 너머로 등대가 반짝이며 길을 안내한다. 논골담길을 오를 때마다, 시간 속을 여행하는 듯한 따뜻한 설렘이 스며든다."라는 그림일기를 써간다.
사실, 여행을 기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여행을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같이 남긴다면, 그것은 감각과 감정을 담은 또 다른 예술이 된다는 느낌이다. 여행지의 풍경뿐만 아니라 그날 날씨, 공기 냄새, 사람들의 표정, 찻잔에 걸친 티백 네이밍까지도 선과 색으로 표현된다.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보면, 더 강렬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이곳은 연필뮤지엄 4층이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연필을 바라보며 발견한 카피다. "모든 시간은 연필에서 시작되었다"는 글을 발견하고 나는 연필로 드로잉에 빠진듯한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행에서 그림일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작가는 "그림일기로 떠나는 여행은 각종 순간의 감정을 기록하며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남기는 과정입니다. 스쳐가는 풍경과 느낌을 그림과 글로 담아내면 여행의 의미가 깊어지고, 내면의 성찰로 이어짐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펼쳐볼 때, 감동을 주는 소중한 추억이 됩니다."라고 했다.
그림일기, 논골담길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
문화기획자로서 박 작가와의 만남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논골담길 같은 지역을 배경으로 여행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일기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골담길은 묵호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스며 있는 곳이다. 이곳을 여행자들이 직접 그리고 기록하는 과정은, 논골담길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간을 정하고 자유롭게 여행작가를 초청하여 여행과 기록을 주제로 그림일기 워크숍을 열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초보자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드로잉 기초 강의와 함께 논골담길을 걷고, 각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스케치하며 여행의 감성을 나누는 자리. 그렇게 논골담길은 또 하나의 예술적 기록 공간이 될 수 있다.
논골담길, 살아있는 이야기를 그리다
과거 논골담길이 처음 벽화마을로 조성될 때, 그 목적은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담은 골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광지로서의 기능이 강조되며, 오히려 논골담길의 본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논골담길을 ‘그리는’ 방식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림일기는 논골담길의 현재 모습을 기억하고, 그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언어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면, 논골담길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골목’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해당화 핀 마을에서 박 작가가 던진 한마디는 작은 용기를 주었다.
“충분히 그릴 수 있습니다.”
논골담길도, 묵호의 풍경도, 그리고 우리 각자의 여행도. 이제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남겨볼 시간이다.
박 작가는 먼저 남긴 브런치스토리 댓글을 통해 “언제나 정감 넘치는 논골담길, 여행자에게 더욱 사랑받기를 바랍니다.”라고 남기며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 “논골담길“ 사랑을 그림일기를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