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노트_ 동쪽여행
밤새 내린 폭설로 동해는 온통 하얀 세상이다.
3월은 봄기운이 완연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동해의 봄은 다르다. 늘 해마다 겨울과 봄이 맞부딪히며, 계절의 흐름이 예측할 수 없는 모습으로 펼쳐진다.
페이스북 기록에 의하면 ‘21년 3월 2일 동해도 많은 눈이 내렸다. 그날도 나는 눈 덮인 거리를 사진으로 남기며, 계절이 만들어낸 특별한 장면을 기록했다. 4년이 흐른 오늘, 3월의 동해는 다시 한번 하얀 눈 속에 갇혔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밤새 내린 폭설은 도시를 하얗게 덮어버렸고, 나의 차량 운행은 멈추고 늘 하던 맨발 걷기도 오늘만큼은 보류했다. 대신, 하얀 세상을 만나기 위해 동해 시민들의 젖줄, 전천으로 나섰다.
전천은 이미 눈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눈 덮인 산책로를 걸으며 봄눈 낭만을 즐기는 폭설 여행자들, 강아지와 조용히 대화하며 걷는 할머니, 강물 위에서 낚싯줄을 던지는 강태공, 저마다의 방식으로 춘설을 만끽하고 있었다.
겨울의 마지막 몸짓 춘설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날이 밝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자 봄눈은 맥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5일까지 많은 눈이 예보되어 있으니, 춘설의 흔적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동해에 내린 춘설은 계절과 자연이 만들어낸 특별한 장면이자,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3월의 눈은 왜 내리는가?
춘설이 유독 강원 영동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이 지역의 기후가 동해 바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북쪽에서 내려온 차가운 공기와 동해의 따뜻한 해수가 만나면 많은 양의 수증기가 발생한다. 이 수증기가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응결되면서 눈구름이 형성되고, 강한 북동풍을 타고 동해안으로 밀려온다.
그러나 이 눈구름은 쉽게 내륙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태백산맥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산맥이 장벽이 되어 눈구름을 가두면서 강원 영동 지역에 집중적으로 많은 눈을 쏟아낸다.
겨울의 마지막 흔적, 봄의 시작
눈이 내리는 순간에는 “아직 겨울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눈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정말로 봄이 오고 있구나.”
겨울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존재를 드러내며 자연은 새로운 계절을 위한 정리 과정을 거친다. 눈이 쌓이면서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고, 녹아내린 물이 대지를 적시며 생명을 위한 준비를 한다.
춘설은 변덕이 아니다.
봄이 오기 전, 자연이 마지막으로 다듬는 정리 작업이다.
기후 변화,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
과거에는 계절이 뚜렷했다.
그러나 이제 겨울과 봄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겨울이 길어지고,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지며, 이상기후로 인해 예상치 못한 날씨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3월의 폭설은 단순한 계절적 변수가 아니라, 우리가 기후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인생에도 춘설 같은 순간이 있다
살다 보면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려는 찰나에 갑자기 눈이 내리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다.
하지만 춘설을 보라.
눈이 내린다고 해서, 봄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눈이 녹고 나면 더 따뜻한 계절이 찾아온다.
그러니 춘설 같은 순간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말자. 그것은 더 나은 계절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눈이 덮인 산책로를 밟으며, 계절이 만들어낸 순간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강물 위로 흩날리는 눈,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산책길에서 마주친 강아지와 가족의 조용한 대화.
눈이 내린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눈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더 좋아한다.
곧 눈이 녹고, 물이 흐르고, 봄이 온다.
우리는, 그 봄을 맞이할 준비 할 때다.
전천 춘설, 사진_ 조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