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를 싣고 달리는 KTX 아세요?

213. 노트_ 동쪽여행

by 조연섭

동해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 출장길에 오른 9일 아침이다.

창밖으로 스치는 초여름 들녘이 눈부시다.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좌석 앞 매거진을 꺼내 들었다.

잠시 눈을 붙일까 하다가도, 활자 하나가 주는 위로를 잊지 못해 꼭 한 번은 펼쳐보게 된다.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표지부터 묵호 상징의 하나인 '해파랑전망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종이를 넘기는 순간, 낯익은 이름과 익숙한 풍경이 반긴다.


‘논골담길.’

동해문화원이 2010년부터 조성했다는 소개 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KTX매거진 7월호 캡쳐

묵호는 오래전부터 논골이라는 이름으로 늘 이 길이 있었다. 언덕을 따라 오르는 골목길이다. 동해문화원이 마을주민들의 생활문화 전승을 위한 공모사업이 시작되면서 마을의 이야기 표현 도구가 벽화가 됐다. 한 해 두 해 늘어나 100여 곳에 이르렀다.

벽화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등대, 그 모든 것이 오늘 내 마음속에도 그대로 펼쳐졌다.


동해에서 바다들 만나는 열차에서 본 KTX 매거진 7월호는 반가운 이름과 공간 '묵호'로 가득했다.

여행작가 채지형, 조성중 부부, 여행책방 잔잔하게, 연필박물관 등 묵호를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과 공간이 실려 있었다.

특히 채지형 여행작가가 최근 발간한 동해살이 에세이 『언제라도 동해』도 함께 소개되고 있었다.

매거진에서 소개된 채지형작가의 ‘언제라도 동해’

그 순간, 나는 잠시 이 객실이 내가 살고 있는 동해의 작은 거실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치 오늘의 출장을 위해, KTX가 묵호를 통째로 싣고 와 내 앞에 풀어놓은 느낌이다.


출장길이라 PT 자료가 가방을 메우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묵호를 천천히 걷다가 논골담길을 천천히 오르고 있는 기분이다.

묵호의 바람이, 묵호의 햇살이, 묵호 사람들의 표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묵호는 언제나 그런 곳이었다.

떠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다시 돌아오라는 인사를, 머무는 사람에게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라는 격려를,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잠시 쉬어가라는 온기를 아낌없이 건네는 곳.


9일 아침 나는 서울로 향했지만, 결국 서울에서 퇴근하듯 다시 묵호로 돌아왔다.

논골담길의 담벼락 아래에 핀 작은 들꽃처럼, 내 삶의 뿌리는 늘 묵호에 닿아 있으니.

마치 오늘 KTX 매거진이, 그 사실을 잊지 말라며 살포시 내 무릎 위에 내려앉은 것만 같다.

KTX매거진 7월호 '여행책방 잔잔하게' 캡쳐
KTX매거진 7월호 연필박물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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