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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1함대의 위대한 유산, '일심학교'

9. 보훈해봄

by 조연섭

전 해군 제1함대사령부 사령관 천정수 제독이 동해문화원 국가보훈부 보훈해봄 사업 참여를 위해 권세춘 중사에게 편지 한통을 보내왔다. 이 한 통의 편지는, 동해시 발한동 야산에 잠들어 있던 역사의 한 장을 우리 앞에 생생히 펼쳐 보인다. 편지는 후배 전우가 선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한 개인의 헌신이 어떻게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는가를 증언하는 묵직한 사료와 같다.

천전수 전, 사령관 주도 표지석 제막식(2018.10.18)

편지가 소환한 ‘일심(一心) 학교’의 이야기는 놀랍고도 감동적이다. 1967년부터 1986년까지 해군 묵호경비부(제1함대사령부의 전신)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운영, 총 85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비인가 중·고등학교. 사령관이 교장을, 군종목사가 교감을, 해군 장병들이 교사를 맡았던 이 특별한 학교는 그 자체로 민군 상생의 귀한 모델이다. 그러나 천 제독의 편지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비밀’과 ‘감동의 스토리’가 바로 권세춘 중사에게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전 천정수 사령관의 편지

학교의 공식 설립은 1967년이지만, 그 씨앗은 이미 3년 전인 1964년, 권세춘이라는 한 해군 중사에 의해 뿌려졌다.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궁핍의 시절, 박봉으로 자신을 건사하기도 어려웠을 그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을 위해 야학을 열었던 것이다. 천 제독의 “모든 것이 풍요로운 지금도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데”라는 담담한 문장은, 시대를 초월하여 권 중사의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역설한다.


‘일심(一心)’, 즉 ‘하나의 마음’. 학교의 이름 그것은 권 중사의 첫 마음이었고, 그의 뜻을 이어받아 과로로 순직한 故 김수남 군종목사의 희생이었으며, “피와 땀으로 얼룩진 일심을 건설하시다 숨져가신 스승”의 넋을 기리고자 추모비를 세웠던 제자들의 애끓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잊힐 뻔한 추모비를 다시 찾아내고 표지석을 세우며 그 정신을 계승하려는 천 제독과 졸업생들의 간절한 마음이기도 했다. 결국 일심학교는 한 사람의 선의가 공동체의 헌신으로 확장되고, 세대를 넘어 기억되고 계승되는 역사의 구체적 증거인 셈이다.


천 제독은 편지의 말미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일심학교를 마주 대하며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이제 편지를 읽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되었다. 일심학교의 이야기는 더 이상 발한동 언덕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다.

일심학교, 사진_동해문화원 DB

한 사람의 헌신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음을, 진정한 공동체는 ‘하나의 마음’으로 서로의 빛이 되어줄 때 탄생함을 일깨워준 권세춘 중사와 이름 모를 수많은 장병 교사들. 그리고 그 고귀한 역사를 현재로 소환해 준 천정수 제독의 편지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뿌린 ‘사랑의 씨앗’을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틔워낼 것인지 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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