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보훈해봄
세대를 넘어, 제복을 넘어… 권세춘 중사에게 도착한 8통의 편지
청해부대에 파병 중인 해군 상사 아버지, 동해에 뿌리내린 어머니, 그리고 해군 부사관이 된 첫째 딸부터 열 살 막내까지. 해군 1함대사령부 조정환 상사 가족 8명이 한 인물을 향해 빼곡히 눌러쓴 8통의 가족편지가 지난 8월 1일 도착했다. 동해문화원이 공모사업으로 진행중인 해군 제1함대 장병 구술사 ‘동해를 지켜온 사람들 활용사업‘ 국가보훈부 보훈해봄 참여를 위한 해군가족 마지막 편지다.
수신자는 60여 년 전, 자신의 집을 교실 삼아 배움에 목마른 청소년들을 위해 묵호의 작은 언덕에 ‘일심학교’의 문을 열었던 전 묵호경비부(현 해군 제1함대 사령부) 소속 권세춘 해군 중사다. 생사(사령부 조사 중)조차 알 수 없지만 그 소중한 공익수호 정신은 "별 이상의 가치다."라고 우리는 그를 "별이 된 스승" 으로 부르고 있다. 이제 한 가족의 마음이 모여 시공을 초월한 ‘정신적 교신’을 시작했다.
편지는 막내 조다빈(10) 양의 순수한 다짐에서 시작된다. “아저씨 덕분에 많은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친구들을 돕는 사람이 될래요.” 나이가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시선은 깊어진다. 다섯째 나빈(12)은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라며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써 보냈다. 넷째 가빈(14) 양은 “군인이 지역사회의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라고 쓰고, 사회의 문턱에 선 둘째 우빈(18) 군은 “시대의 문제에 방관하지 않는 어른이 되겠다”라고 약속한다. 한 인물의 헌신이 미래 세대의 마음속에서 연령에 따라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의 책임감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짐은 제복을 입은 아버지와 딸에게서 ‘실천’의 약속으로 이어진다. 해군 부사관 287기로 임관한 첫째 조수빈(20) 하사는 “‘군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모습에서 제복의 무게와 나아갈 길을 깨닫는다”며 “선배님의 고귀한 유산에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될 것을 엄숙히 약속드린다”라고 신고한다.
아버지 조정환 상사 역시 “선배님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리더십과 공동체 정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경례를 올린다. 아버지에게는 평생의 ‘지표’였던 정신이, 이제 막 해군의 길을 걷기 시작한 딸에게는 미래를 비추는 ‘등대’가 되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아내이자 어머니인 우주영 씨의 편지와 소회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우주영 씨는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얻었을지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게 된다”며, 단순한 학교가 아닌 ‘한 세대를 일으켜 세운 희망’을 만들어준 권 중사의 마음에 감사를 표했다.
어머니 우주영 씨는 13년간의 동해살이를 회고하며 “군 가족으로서 한 군데 자리 잡기가 힘들지만, 동해의 환경과 좋은 사람들 덕분에 노후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라며 “이렇게 좋은 지역인 동해에 군 가족들이 자리 잡고 살 수 있게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바람을 전했다. 권 중사가 1960년대 동해에 심은 ‘공동체 정신’이 수십 년 후, 한 군인 가족이 이곳에 뿌리내리고 싶어 하는 소망과 맞닿는 순간이다.
보훈(報勳)이란 과거의 공훈에 보답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여덟 통의 편지는 보훈의 진정한 의미는 기념과 추모를 넘어, 숭고한 정신을 현재의 삶으로 가져와 미래의 가치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권세춘 중사의 이타적 헌신은 한 가족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아이들의 꿈이 되고, 군인의 사명이 되었으며, 마침내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희망으로 피어났다.
우리가 권세춘 중사와 이름 모를 수많은 영웅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이 지키고 만들고자 했던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를 오늘, 여기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군인과 그 가족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을 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60여 년 전 한 참군인이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한 살아있는 응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