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만학일기
현대 사회에서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인맥’을 꼽는다. 좋은 사람을 많이 알고, 넓은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 곧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국내 정상급 가수 박진영의 어록은 이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는 “인맥 넓히느라 시간 많이 쓰지 마라. 사람은 다 이기적이라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알아서 도와준다.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몸을 관리하는 데 시간을 우선적으로 써라”라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은 연예인의 단순한 자기 관리 노하우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인간관계와 자기 계발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우선 그의 발언은 인맥의 본질에 대한 재해석을 제시한다. 인간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상호 호혜적 이어 보이나, 실제로는 이해관계가 맞을 때만 굳건히 유지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사회적 자본’ 개념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인맥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지닌 능력과 자원이 교환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사람을 억지로 붙잡고 시간을 쏟기보다, 자신이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박진영의 메시지는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를 일깨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 제한된 시간을 어디에 투자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인맥 관리에 급급하기보다 자기 실력을 갈고닦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큰 가치를 만든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자기주도 학습’의 원리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맥은 이동할 수 있으나, 자기 실력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셋째, 그가 강조하는 몸 관리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단순히 외모나 건강 차원을 넘어, 신체적 자기 통제는 사회적 신뢰와 연결된다. 철학자 미셸 푸코가 ‘규율권력’ 개념에서 지적했듯, 신체의 관리와 훈련은 근대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이자 자원이 된다. 박진영이 꾸준한 체력 관리와 절제된 생활로 대중 앞에 서는 것은 단순한 이미지 전략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사회적으로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박진영의 어록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관행, 즉 ‘관계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읽힌다. 무조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억지로 관계를 쌓는 방식은 이제 설득력이 약하다. 진정한 사회적 연결은 내가 타인에게 어떤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실력이 곧 최고의 인맥이다.
결국 “내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무조건 나를 찾는다”는 그의 말은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오히려 인간관계의 현실을 정확히 드러낸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는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기성세대에게는 관계 맺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 현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통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맥의 크기보다 내 안의 실력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길이며, 시대가 요구하는 자기 계발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