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3.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고단한 삶, 애써 이기려 말고 실컷 지고 가자
묵호를 걷다 보면 함민복 시 '눈물은 왜 짠가' 생각날 때가 있다. 묵호 사람들이 바지게를 지고 쉼 없이 오르고 다시 바다로 나가야 했던 삶의 모습은 자연환경에 순종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묵호사람의 일상이었다. 때문에 삶을 애써 이기려고 하지 않고 지고 살았다. 그 묵호가 그냥 좋아 훌쩍 동해로 여행을 떠난 작가가 있다.
2021년 가을, 묵호가 좋아 묵호 중심에 여행책방으로 둥지를 튼 채지형 여행작가 가족의 잔잔한 활동이 최근 동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곳곳을 여행하며 글을 써오다 묵호에 반해 동해살이에 들어간 작가는 잠시 멈춘 여행과 글쓰기를 최근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동해문화원, 도시재생센터 등 지역 기관단체의 출판물 큐레이터나 강연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기자와 기획자로 일하다 여행을 담는 글을 위해 여행작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 연구소와 여행작가학교를 운영하며 여행과 글쓰기 지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길은 위대한 철학의 공간이고 여행은 공부다.
“작가 채지형 씨에게 길은 학교였고 여행은 공부였다. 여행이라는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줄고 삶을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은 커졌다. 아무리 물을 줘도 변함없는 콩나물이 어느 순간 불쑥 자라는 것처럼, 한참 만에 돌아보면 우리 마음도 쑥쑥 자라 있곤 한다. 사람은 길에서 배운다.”
지금도 동해 묵호에서 남편 조성중 씨와 운영하는 여행책방 ‘잔잔하게’는 심야 책방, 글쓰기 강좌, 독서 모임 등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묵호가 좋아 동해로 왔어!” 첫 구술자로 모시고 묵호로 오게 된 동기와 논골담길과의 인연, 앞으로의 계획을 글로 들어보겠습니다.
Q. 묵호에 둥지 튼 동기와 본인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여행작가 채지형입니다. 여행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묵호 발한삼거리에 ‘잔잔하게’라는 여행책방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묵호의 잔잔함이 좋아,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Q. 묵호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묵호는 다정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스럽고 따스하고요. 풍경도 사람도요. 서울에서 비슷비슷한 빌딩만 보다가 논골담길의 알록달록한 지붕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각기 다른 개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았어요. 누구라도 품어줄 것 같은 넉넉한 바다도 있고요. 그리고 묵호는 놀라운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에요. 지금은 잔잔하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북적이던 중심이었죠. 이런 이야기들이 묵호를 더 자랑스럽게 만들어요. 친절하고 고마운 이웃 덕분에, 묵호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답니다.
Q. 묵호와 논골담길과의 인연이 궁금해요
묵호에 둥지를 튼 계기는 2020년 가을 발한도서관에서 진행한 여행 글쓰기 강좌였어요. 강의하러 왔다가 동해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강의하면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으로 논골담길에 머물렀는데요. 그때 매일 아침 해돋이를 보다 보니, 이곳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남편을 설득해서, 묵호로 둥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Q. 묵호와 논골담길에 바람이 있다면?
논골담길에 있는 바람의 언덕 카페가 동해시 관광에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이 효과적으로 운영 관리 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식당 공간도 너무 아깝고요. 어구 전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 논골담길이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책임자도 없고요). 원형을 해치는 개발은 지양해야겠지만, 꾸준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묵호에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 있는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벽화 그리기를 비롯한 논골담길을 새롭게 만드는 여러 작업에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Q. 묵호와 생활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들?
묵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매일 일출을 보고 기록한 일입니다. 어디서나 매일 뜨는 해는 신경 쓰지도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아침마다 일출을 보기는 처음이었어요. 처음에는 일출이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느냐고 생각이 들었지만 늘 같은 해는 없었죠. 그날의 바다색, 구름의 양, 하늘의 채도 등에 따라 정말 다양한 색과 모습을 보여줬고 그 모습을 매일 사진으로 담았어요. 그리고 동해에서도 특히 난 ‘묵호’를 좋아해요. 그건 어민들의 애환이 담긴 논골담길 담벼락에 스며든 소금 내가 정겨웠고, 어둠이 깔린 바다를 향해 묵호등대가 360도 돌며 길을 열어주고 그 길로 작은 배가 한 줄기 불빛에 의지해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은 가슴을 울리게 합니다. 또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오징어잡이 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Q. 여행책방 ‘잔잔하게’ 열고 주위 분위기는 어떤가?
묵호 지역 주민들은 과거 주변에 책방과 인쇄소가 많아 최근 도시재생 사업으로 연필박물관도 들어서게 됐다며 이곳을 들르면 그때가 생각난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지금의 묵호를 우리는 잔잔한 묵호로 불렀으나 주민들은 옛 역동적이며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시간이 많고 대부분 그 시절 묵호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책방은 여행자도 오시지만 동네 주민분들도 자주 방문해 주십니다. 묵호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시는데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 중 하나는 강원은행입니다. 책방이 위치한 발한삼거리 현 KT 대리점이 묵호의 황금기에 강원은행 있었는데 땅값이 강원도에서 제일 비싼 곳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묵호는 활발한 어업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하고요. 폰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이 없던 시절이라 벌어들인 돈을 부치거나 은행에 넣어 두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고 합니다. 시장도 아니고 은행이 북적일 정도면 묵호가 얼마나 대단한 곳일까 상상해 보게 됩니다. 묵호에는 길에 돌아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정말 대단했겠죠? 그리고 그런 곳 근처에 책방을 하고 있으니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시는 지역 분들 덕분에 든든합니다.
간판 없는 서점.
잔잔하게 책방은 문을 열고 일 년이 넘는 동안 간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간판 없는 서점이 생각이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간판을 달지 않으려고 한 건 아니고요. 이왕이면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자 간판이 없는 게 생각인 양 굳어져 버렸고 방문하시는 분들도 잘 찾아오시더라고요. 하지만 간판이 없어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는 분이 계셔서 책방을 찾아오시는 분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에 최근에 간판을 달았습니다. 간판을 달고 나서 책방 위치를 묻는 연락은 줄어들었고 찾아오시는 분은 더 많아져서 달길 잘했구나 진즉 달 걸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묵호, 변하는 속도가 느려서 좋습니다.
변하는 속도가 느려서 매력적인 묵호!
책방에 오시는 분이 가장 많은 질문은 “묵호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입니다. 책방지기는 “변하는 속도가 느려서 좋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과거 화려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쇠퇴한 구시가지인 묵호, 활발하고 북적거리지는 않는 천천히 변해가는 그 느림의 매력이 있는 곳입니다.
현대사회는 빠르게 바뀌어 가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살아가야 하고 대도시의 삶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인파에 휩쓸려 이동하는 등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반면 묵호는 천천히 변하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고 이웃과 함께하고 일상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일을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매력에 빠져서 묵호 인근에 살기 시작한 이후 이웃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참 좋습니다. 동네책방 수명이 짧은 이유를 느끼게 되었어요. 일단 문을 열자는 마음에 호기롭게 문을 열었지만, 책방이 수익이 나긴 힘든 구조더라고요. 지속가능한 책방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묵호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묵호는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운 곳이더라고요. 이 사랑스러움을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저희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해요. 책방이 뭔지 자영업이 뭔지 모르고 시작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주위의 반응
동네분들의 가장 큰 반응은 ‘책방을 내줘서 고맙다’였어요. 사실 저희가 오히려 감사할 일인데요. 이 자리를 빌려, 큰 절 올립니다. 여행자분들은 ‘묵호에 이런 곳이!’라며 놀라는 분들이 많으시고요. ‘여행 그 자체’라고 표현해 준 손님도 계시더라고요. 우리 모두가 잠시 소풍온 여행자잖아요. 그 여행자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감을 만들고 싶었는데, 손님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다양한 책이 많다’는 반응도 꽤 많아요. 저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타 동네책방에 비해 많다고 생각하시는 듯해요. 어쩌면 손님이 공감할 만한 책이 많아서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고요.
책방의 미래
1년 4개월 만에 간판을 달았다고 했잖아요. 묵호처럼 저희도 느리게 잔잔하게 가려고요. 저희 희망은 오래오래 머물면서 여행자나 동해분들에게 책과 함께 살아가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건데요. 그러려면 저희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고민해야겠죠. 묵호의 사랑이 넘치는 공간, 새로움을 만나는 공간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Q. 묵호에서 앞으로의 계획은?
묵호의 재미를 계속 발견해 가려고요. 제가 찾은 매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책방에서 소소한 문화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할 예정입니다. 묵호의 청년 사업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모색하고 있고요. 책방 소식은 인스타그램 「잔잔하게」를 통해 수시로 올리고 있습니다.
@zanzan_bookshop으로 놀러 오세요.
Q. 끝으로 브런치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해요
바다와 산을 한품에 담은 매력적인 곳
많은 분이 이곳 동해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를 모르고 지나치시는 것 같습니다. 동해는 바다와 산을 한 품에 담은 매력적인 곳은 틀림이 없다. 모두가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사랑을 표현해 주신다면 더 밝은 미래 동해와 묵호가 그려질 것이라 믿습니다. ‘여기서 평생을 살 거예요’라는 정답은 없지만 내 여행 인생에 동해, 특히 묵호와 논골담길은 어떠한 곳보다도 많은 시간과 추억이 녹아들 것은 분명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모두가 함께 소통하면서 천천히, 잔잔하게 그리고 또 진하게 이야기를 나눠가길 소망합니다.
Closing
작가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예쁜 여행과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묵호에서 고단한 삶을 지고 가는 묵호사람과 여행자들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 늘 동해를 밝혀주시고 ‘채지형 작가가 묵호로 간 까닭’을 여행과 글로 묵호에 담기 바랍니다.
Q 박미현_ 강원도민일보 이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