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연섭 Jan 05. 2024

올해도 ‘안식년’은 공염불?

114. 매거진 글소풍

안식년은 공염불

일의 양을 줄이자고 큰 소리로 외친 지 2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다짐하던 일의 규모 줄이기는 정리도 되기 전 새해벽두부터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몰려든다. 결국 안식년을 맞이하는 날은 직장을 그만두는 해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늘 안식년으로 업무량을 줄여보겠다 약속하고 한 번도 지키질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는 감히 해낼 수 없는 규모의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더욱 쉼이 필요했다.

필자가 소속된 문화원은 문화원이 조성한 논골담길의 성과로 생각도 못했던 지역문화박람회라는 큰 행사를 유치하게 되었고 10월에 3일간 전국 231개 문화원을 대상으로 개최했다. 역시 급한 일정의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억대가 넘는 순수 국비 지원 예산에 기록가 10명 구술자 20명 관리 인력 등 연인원 40여 명 이상이 투입된 고된 작업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프로젝트’ 등 고유업무 외 각종 공모사업과 대회 등 많은 사업을 진행해 몇 안 되는 직원들은 모두 지쳐 있는 상황이다.

올해도 큰 소리로 안식년 합시다. 외쳤지만 신규사업과 위탁사업을 보니 새롭게 출전팀을 꾸려야 할 강원민속예술축제 출전 사업도 있고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공모사업도 있고 문화학교 22개 교실운영 등 사업규모상 올해도 안식년은 공염불에 불과한 일이 됐다. 노동법의 업무명령권의 한계를 보면 “업무명령권은 근로계약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근로계약 내용에 따라 근로제공과 관련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만 정당성이 인정된다. 업무명령이 업무상  필요성에 비해 근로자들에게 주는 생활상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거나 업무상 필요 이상의 다른 목적이 있는 경우, 업무명령권을 남용한 것으로 정당한 업무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 “로 나와 있다. 결국 근로자에게 근로자가 감당하기 힘든 근로를 명령하는 일도 업무명령권 남용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구로공단 시절도 아니고 노동법을 펼치는 이유는 사람이 먼저며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업무의 량은 한계사 있다는 점을 공유하자는 의미다.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 표지
뇌를 쉬게 해야 생산력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제가 늘 주장하는 사람의 머리는 20%를 비워줘야 새로운 생산 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일을 줄이자, 일명 안식년이 필요한 이유를 강조했다.

오늘은 이제껏 뇌과학이 말하지 않은 뇌 비우기의 비밀을 세계 최고의 뇌과학자 닐스 비르바우머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인간의 두뇌를 이야기하는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을 통해 뇌를 쉬게 해야 하는 원리를 이해해 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뇌는 텅 빈 상태를 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뇌가 텅 빈 상태를 필요로 하게 하는 이유는 물론, 텅 빈 상태에 이르는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텅 빈 상태’나 ‘텅 빈 뇌’라는 말은 단순히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휴식의 개념이 아니다. 수 초간 혹은 수 시간 동안이라도 사고와 감각이 멈춰서는 ‘무(無)’의 상태를 접하는 일을 말한다.

이는 마치 전력에 과부하가 걸려 불꽃이 튀고 퓨즈가 나갔을 때 일단 두꺼비집부터 내리는 행위를 비유로 들 수도 있겠다. 이때 두꺼비집을 내리는 행위가 바로 뇌를 텅 비우는 시도와 연결된다. 저자는 일상에서의 체험뿐만 아니라 더욱 급진적인 상황까지 이 주제에 대입시킨다. 바로 텅 빈 상태라는 질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다름 아닌 우울증, 루게릭병, 치매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당연히 치명적으로 인식되는 이들 질환이 사실은 생각만큼 좌절을 겪을 병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질환을 앓는 환자는 결국 자아를 망각하고 텅 빈 상태에 이르는데, 이 상태가 전혀 두렵거나 괴롭지 않으며 오히려 평온과 고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거센 반박과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뇌과학자인 저자는 실제 감금증후군 환자(루게릭병으로 인한 전신마비 환자)의 뇌에 측정 칩을 장착했다. 그러고는 그에게서 평온과 행복감이 들 때 방출되는 뇌파와 전류의 변화를 발견하며 이 사실을 증명했다.

너무 많은 생각이 우리를 망가뜨린다

“텅 빈 상태의 긍정성을 생각하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 말은, 우리의 삶 또한 고통과 번민에 사로잡혀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말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만만치 않은 철학과 전문적인 뇌과학 이론이 수시로 등장하기에 독자들은 머리를 굴리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그래, 생각에 집착하지 말자. 때론  마음을 비우고 머리를 비우며 현실적인 고통에서 떠나보는 연습을 하자’라는 마음을 먹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저자가 원하는 결론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너무 많은 생각이 우리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나가는 말

오늘 필자는 안식년에 대해서 뇌 과학의 거장이 쓴 책과 노동법의 업무명령권의 한계를 예로 들며 생각해 봤다. 안식년이란 “유대주의에서 일주일 가운데 7일째인 안식일처럼 7년에 휴식년을 갖는 것을 말한다. 주로 대학교 교수들이 6년 강의를 하고 7년째 연구년으로 안식년을 가지고 외국에서 연구하는 사례. “를 말한다.

작은 조직에서 무슨 안식년이냐 따지는 사람도 있겠다. 필자가 강조하는 안식년의 개념은 열악한 근로조건이 이어지는 구로공단 시절도 아니고 사람이 있고 일이 있었다고 본다면 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위해서 일의 양을 줄이고 20% 이상의 머리를 비워야 하며 식혀야 한다는 의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첫 술, 소주 1병의 수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