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맨발 걷기
천초와 백사장, 자연 순환과 발걸음
9월 25일 306일째 맨발 걷기, 여전히 약속의 땅 한섬 해변을 찾았다. 해변의 모습은전날과 조금 달랐다. 백사장은 따스한 햇살 아래 반짝이지 않고, 대신 그 위를 덮은 자주색 ‘천초’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 천초는 과거 제주 등 해안에 종사하는 해녀들의 주된 수입원이었으며, 그들은 이 해초를 캐며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천초가 해안가를 가득 메운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린다. 왜 이토록 많은 천초가 이곳으로 밀려왔는가?
천초가 백사장에 밀려오는 현상은 단순히 바람이나 조류 변화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수온 상승과 생태계의 변화가 그 배경에 있다는 생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천초는 바다의 온도와 염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거 안정적이던 바닷물의 온도와 염도가 조금씩 변하면서, 천초의 서식지가 바뀌었고, 그것이 해안으로 밀려오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바다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영향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난다.
맨발로 해변을 걷는 순간, 발아래 천초의 감촉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발바닥을 간질이며 걸음을 방해하는 그것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천초는 바다에서 나와 백사장으로 와서도 여전히 생명의 일부로, 자연의 일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천초가 해안으로 밀려온 이유는, 단지 자연의 순환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기후위기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발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불편함이, 실은 거대한 생태계 변화의 증거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바다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천초가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을 단순 자연 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천초가 밀려오는 이 백사장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공간이 되었고, 우리가 마주한 변화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
맨발로 걷는 이 순간에도 나는 천초 위를 걸으며, 작은 해초가 전하는 메시지를 깊이 새겨본다. 자연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그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변화에 함께 적응해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글, 사진_ 조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