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글소풍
책장을 덮어도 결코 잊을 수 없고
끝나지 않는 오월, 피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한 간절한 노래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와 같은 마을에서 엄마는 약국을 했었고 본인은 너무 어려서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그곳에 살았다는 모 여행작가에게 추천받은 10월의 책 중하나다. 다시 보는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는 마치 빠져나오기 힘든 '깊고 어두운 못'을 마주한 듯한 경험을 준다. 소설은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고통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담긴 이야기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주인공 동호는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그 자체로 비극의 중심을 향해가는 여정이다. 죽은 자들과 남겨진 자들 사이에서 그가 초를 밝히는 장면은 단순한 추모의 행위가 아니라,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맞닥뜨린 인간의 본능적인 애도이자 무력함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이 무력함은 단지 동호만의 것이 아니라, 당시 수많은 이름 없는 영혼들이 겪었을 아픔이다.
영혼들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평안하길!
한강은 그러한 아픔을 손에 쥐고서 천천히, 그러나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이야기한다. 동호와 함께 고통받는 형과 누나들의 삶은 경찰의 폭력 앞에서 더 이상 온전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문이자 치욕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무너져간다. 일상의 회복은커녕 그들의 삶은 되돌릴 수 없는 상처로 얼룩진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잊혔을 수많은 개개인의 고통을 떠올렸다. 그들이 겪은 감정은 단지 한 시대의 고통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역사의 상처를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동호와 그의 주변인물들이 경험한 상처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리고 여전히 치유해야 할 아픔이다.
한강의 문장은 잔잔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나 자신이 그 시절 광주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나 그 감정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소년이 온다는 역사 속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존재를, 그리고 그들이 품었던 희망과 절망을 우리 앞에 놓아둔다.
이 소설은 기억의 중요한 역할을 일깨운다. 한 사람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 결코 끝이 아니며, 뒤에 남은 자들이 그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길을 결정짓는다. 소년이 온다는 그 기억의 과정 속에서 깊은 상처를 마주하는 일의 어려움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을 지켜내야만 한다는 필연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동호의 그림자는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그의 침묵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물음을 던질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