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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Oct 29. 2024

그믐달과 빛났다. 맨발러의 추암 대행진!

113. 맨발 걷기

그믐달이 빛나는 바다, 발끝에서 시작되는 하루

그믐달이 해변을 은은하게 물들인 이른 새벽, 나는 추암 해변을 어김없이 걸었다. 해변을 스치는 파도가 은빛으로 반짝이며 나의 발끝을 적신다. 오늘은 해변 맨발 걷기 329일째. 1년이 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 해변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곳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 역시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믐달 빛나는 어두운 해변의 모습을 담기에는 스마트폰의 한계다. 사진은 포토리뷰로 남기고, AI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로 현장 분위기를 이야기 설계로 직접 디자인해봤다.

Ai 디자인, 프롬프트 엔지니어_ 조연섭

매일 걸어도 동해 추암 해변은 같은 날이 없다. 바람의 방향, 파도의 높이, 모래알의 촉감은 그날 날씨와 하늘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다. 그 속에서 나는 이른 새벽의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며 마음을 비운다. 자연의 한가운데, 맨발로 땅을 딛는 느낌은 내가 살아 있음을 몸으로 깨닫게 한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나를 보자 인사를 건네는 공무원 간부가 손을 벌리며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에는 활기가 넘친다. 매일 새벽 이곳을 찾는 동료이자 해변의 동반자인 셈이다. 이외에도 서로의 이름도 잘 모르지만 우리는 같은 해변을 걸으며 서로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저 멀리 바다 쪽으로 향해 명상에 잠긴 사람이 보인다. 수평선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고요한 파도와 대화라도 나누는 듯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고요한 모습 속에서 깊은 평화가 느껴진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여유롭게 소복소복 걸음을 옮기고 있다. 맨발로 걷는 발걸음마다 느껴지는 자연의 촉감이 그들의 얼굴에 편안함을 더해 준다.


다양한 발걸음이 교차하는 이 새벽의 해변은 마치 또 다른 작은 세상 같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대로 걸어가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간과 리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뛰는 이도, 천천히 걷는 이도, 명상에 잠기는 이도 결국 같은 바다 앞에 서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매일 이른 새벽마다 바다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모두에게 특별하다.


해변을 가로지르는 발자국에는 그들의 하루가 녹아 있다. 일을 향한 발걸음,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발걸음,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발걸음. 그 발자국들 속에서 나는 무언가 더 큰 것과의 연결을 느낀다. 이 해변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그날의 기운을 나누고, 서로에게서 작은 위로를 얻는다.


그믐달이 비추는 바다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서로에게 이름 없는 응원을 보낸다. 아침 해가 점차 떠오르며 그믐달의 빛을 대신할 때, 나는 오늘도 이 추암 해변에서 맨발로 걸은 시간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발끝으로 느끼는 자연의 촉감과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나를 하루의 시작으로 이끌어 준다. 이곳에서 맨발로 걷는 매일의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과 교감하는 법’이다. 세상의 속도를 뒤로 한 채, 발끝으로 전해지는 순간의 평온함. 그것이 나를 다시 이 해변으로 이끄는 이유다.


매일 다른 날씨와 파도의 높이, 그날의 달빛까지도 모두가 새로운 경험으로 남아 있다. 오늘의 나를 이끌어 주는 것은 그 순간순간의 축적된 시간들이며, 그 속에서 나는 바다와, 달과, 그리고 함께 걷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간다.

사진 _ 조연섭 브런치 작가,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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