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맨발 걷기
깊어가는 가을, 동해안 7번 국도의 절경을 품고 흐르는 동해 망상명사십리 해변에서 뜻깊은 만남이 있었다. 강원문화예술연구소 허준구 소장과 박신영 화가와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자연이 주는 특별한 감각과 여유를 만끽했다. 허소장은 직장 동료로 이어진 관계이기에, 이번 맨발 걷기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이날 일정은 걷기도 좋은경험이지만 박 작가의 예술 세계와 공동체적 관심을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실, 이번 만남의 계기는 박신영 작가의 작품 전시가 끝나는 날과 맞물려 있었다. 작가는 지난 10월 ‘월산아트만‘에서 개최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유관순의 삶을 독창적인 화풍으로 표현해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그 전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여 허 소장과 함께 맨발 걷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대회의 우수상인 작품은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상징보다 지금의 시대가 다시금 성찰해야 할 사회적 메시지로 재조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이번 맨발 걷기 역시 그 연장선에서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사람이 하나 되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했다.
송강 정철이 사랑한 소복의 향기는 바로 이 망상해변의 ‘용존산소’가 아니었을까?
걷는 동안 허 소장은 문득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 망상이란 이름의 시에 망상을 남겼던 송강 정철을 떠올렸다. “송강 정철이 사랑했던 ‘소복’의 향기는 바로 이 망상해변의 ‘용존산소’가 아니었을까?”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마치 시와 같았고, 허 소장의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철학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박 작가는 망상에서 대진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좌측 해변에 널려있는 주상절리 모양 바위를 보며 “이곳은 마치 지상천국 같다. 다도해 섬들 사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해변을 걷는 작가의 모습은 맑은 영혼의 소녀와 같았다. 또한 눈빛엔 예술가로서의 감성이 가득했고, 자연을 예술의 재료로 삼는 그녀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빛났다. 이 순간 우리는 동료가 아닌, 자연과 예술을 매개로 연결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이번 맨발 걷기는 동해의 자연을 체험하며 서로의 관심과 가치를 나누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허 소장과 박 작가의 맨발 걷기 참여는 자연과 사람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활동을 보여주었고, 이번 맨발 걷기 여행은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
특히 박 작가가 느낀 자연 속 현장 느낌은 현대인들이 잊고 지낸 본연의 감각을 일깨워주었으며, 허 소장이 제안한 ‘용존산소’라는 표현은 자연 속에서 삶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철학적 시선이었다. 이처럼 외부 인사들이 맨발 걷기에 참여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단순 레저활동을 뛰어넘는 깊은 여운을 남겼다.
걷기를 마친 후, 우리는 춘천의 공지천 황톳길과 동해의 해변 걷기를 함께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나눴다. 동해와 춘천을 오가며 맨발로 길을 걷는 이 프로그램은 두 도시가 가진 매력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고, 자연과 도시에 깃든 강원의 정서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이는 자연을 사랑하고, 도시 속에서도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날 우리는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허물며 서로의 가치와 철학을 나누었다. 바다 파도가 부드럽게 발을 감싸는 망상 해변 위에서, 우리 모두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걷는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