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동쪽여행
겨울, 음악, 희망의 이야기
눈 내리는 겨울이면 듣고 싶고 보고 싶고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뜻한 감동을 주는 영화 ‘닥터 지바고‘, 그리고 영화의 영원한 동반자처럼 들려오는 아름다운 OST ‘라라의 테마‘ 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적 감정의 울림을 담은 예술적 메시지로, 듣는 이들에게 영화의 감동과 삶의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상기시키는 걸작이라 할 수 있었다.
30일 저녁 동해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동해플루트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는 맑고 우아한 음색으로 감성과 서정미를 극대화하며, 음악의 깊이를 품격 있게 표현한 무대로, 마치 음악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야기처럼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자리였다.
특히 이날 출연한 87세의 김원두 연주자는 동해플루트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플루트를 통해 나이를 초월한 열정과 섬세한 선율로 감동을 선사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인 그는 은퇴 후에도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풍요롭게 가꿔왔다. 그의 연주는 인생의 깊이와 세월의 감성을 담아 관객들에게 치유와 희망을 전달했다. 김원두 연주자는 나이는 음악을 즐기는 데 장애물이 아님을 몸소 증명하며, 예술의 치유력과 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그의 무대는 예술과 인간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증명했다.
이날 계절 특집으로 준비한 연주, 닥터 지바고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만의 정체성과 감정을 지킬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혁명과 사랑, 자연과 예술이라는 다층적 주제를 통해, 이 영화는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것은 개인의 삶이 아무리 작고 연약해 보여도, 그 안에 있는 사랑과 예술, 희망의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닥터 지바고는 이러한 시기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제공한다. 그것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사랑과 예술, 그리고 자연 속의 평온함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진리를 조용히 상기시켜 준다.
나는 이 연주회에 진행자로 참여했다. 손을 호호 불며 참석한 객석의 많은 청중 앞에 서기 전, 준비한 오프닝메시지는 음악이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들고, 또 어떤 가치를 선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중한 성찰이었다.
연주회가 시작됐다. 나는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이보림 교수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논문으로 집필한 ‘음악 감상법‘에 관한 연구를 언급했다. 교수가 논문에서 밝힌 음악 감상의 방식에 대해 수많은 이론과 방법론을 논했지만, 가장 핵심적이고도 훌륭한 감상법은 ‘생활 속 음악 감상‘이라고 주장했다. 논문을 읽으며 역시 깊이 공감했던 이 대목은,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특별한 환경이나 격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순간순간에 녹아들어 진정한 의미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음악 감상의 가장 훌륭한 방식, 생활 속의 음악
생활 속에서의 음악 감상이란 무엇일까? 이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음악을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커피를 내리는 아침의 짧은 순간, 출퇴근길 이어폰 속에서 울려 퍼지는 멜로디, 조용히 책장을 넘기다 문득 들려오는 먼 곳의 선율, 이 모든 순간들이 음악과 함께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음악은 특별한 의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때로는 잊었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마음속 깊은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보림 교수의 말처럼, 음악이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 삶의 특정 순간에만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이 축적되어 하나의 정서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마치 닥터 지바고의 OST처럼, 영화의 장면과 음악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 기억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 고갈의 시대, 음악이 주는 위로
이날 연주회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플루트 연주회가 희망 고갈의 시대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 한마디는 음악이 주는 기쁨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음악이 가진 역할에 대한 깊은 믿음과 바람을 담고 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피로와 절망감을 안겨준다. 이러한 시대에 음악은 희망의 불씨를 피워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아름다운 플루트의 맑고 투명한 음색처럼, 음악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들어 차갑게 얼어붙은 감정을 녹이고, 새로운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 그것은 크고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을 주는 데서 시작된다.
연주회의 의미와 지속적인 가치
플루트 연주회는 그 자체로 동해라는 지역 사회에 큰 의미를 가진다. 예술이 지역 주민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연주회는 플루트라는 악기를 통해 음악이 얼마나 섬세하고도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러한 예술 활동은 단순히 연주를 듣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 줬다.
나는 이날 연주회를 통해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음악은 우리의 삶에 있어 배경이 아니라, 삶의 중요한 동반자다. 음악은 추억을 만들고, 상처를 치유하며, 희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보림 교수의 논문에서 강조된 “생활 속의 음악 감상”은 우리가 음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지속적인 위로와 영감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음악으로 삶을 연결하다
눈 내리는 겨울, 플루트의 선율은 마치 깨끗한 설경 위를 미끄러지듯 가볍고도 아름다운 울림을 선사했다. 그날 동해문화예술회관에서 울려 퍼진 음악은 연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과 연주자들, 그리고 그 음악을 감상하는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연주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려, 희망이 고갈된 시대에 작지만 따뜻한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음악은 특별한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흐르며,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작은 기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음악이 가진 진정한 힘이자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