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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pr 25. 2023

4월에 태어난 ‘동해시’ 이야기!

29.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동해시東海市 도시 이름 어떻게 명명?
동해시 개청은 1980년 4월 1일이지만 시 개청의 비화는 1978년으로 올라가야 한다. 개청 2년 전부터 강원도청에서 '시개청준비단'의 실무책임자로 일했던 동해 송정출신 홍경표(남, 85, 전 동해시부시장, 동해문화원장) 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기억했다.

"동해시 탄생은 1977년 내무부 '지방자치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랐어요. '인구 과대 지역으로 주민 생활에 불편을 주는 지역은 행정구역 통폐합을 할 수 있다.'라는 시행령으로 시작되었어요. 당시 명주군 묵호읍은 인구가 57,522명이고, 삼척군 북평읍은 44,277명이었어요. 두 읍을 통합해 새로운 시로 만드는 안이 도에서 추진되었지요. 당시 나는 강원도청 지방과 기획예산계에 근무했는데, 시 청사 건립 관계 실무를 맡게 되었어요. 내 고향이 대변혁을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기로 마음먹고 하나하나 추진했어요.

동해시청(2022), 사진_임황락

가장 중요한 사안은 청사 장소 선정과 건립이었어요. 북평읍과 묵호읍이 통합으로 인해 여러 관계자,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 여건상 결국 중간 지점인 천곡리를 신 시가지로 개발하기로 했지요. 청사 건립에 따른 도지사 주재 회의에서 당시 천곡리 중심부를 매입하기로 하고, 1만 평 내외 부지와 1,300여 평의 명주군청 규모로 정했어요. 청사 신축 업무는 삼척군과 명주군 중 어느 군에서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사안이라, 도청 지방과 기획예산계에서 추진했죠.


우선 시설부지와 신축경비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내무부에 신축계획서와 함께 신축비에 대한 특별교부세를 신청했어요. 지역의 미래를 위해 도지사 주재회의 때 결정한 규모보다 청사면적을 더 크게 잡았어요. 새로 개청 하는 동해시는 국제무역항이 두 개소나 있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시인데 명주군청 규모로는 너무 작다고 판단했어요. 청사 규모를 1,300평에서 1,000평을 더 늘려 2,300평으로 신청했어요. 당시 평당 건축비가 70만 원 선이어서 추정사업비를 계산하니 16억 원이 나와 가감하지 않고 내무부에 신청했는데, 다행히 신청한 16억 전액 교부되면서 개청준비는 순항되었어요.


다음은 청사 준비에 들어갑니다. 시의 상징이 되는 청사로 활용도가 높고 품격 있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많은 고민을 했어요. 당시 청사를 건립하는 자치단체를 파악해 보니 경북 구미가 시청을 짓고 있어서 신축현장을 방문하고 청사진 설계도면을 어렵게 구해, 도청 설계 계장에게 넘겨주며 면밀히 검토하여 설계하도록 협조를 구했어요. 실제 신축 청사는 부지 11,350평, 건평 2,271평, 지하 1층, 지상 4층, 신축비 17억 9,400만 원으로 1980년 10월 26일 준공했지요.

동해시 개청(1980.4.1), 사진_동해문화원 DB

그 후 본인은 기획예산계에서 행정계 차석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다시 동해시 개청 준비와 관련된 일을 맡게 되었어요. 준비 업무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지원하기 위해 행정계 소속으로 '시 개청준비기획단'을 구성해 업무를 추진했어요. 현지에서는 '북평지구지원사업소'를 설치해 행정조직, 각종 공부, 자치법규를 정비했어요. 행정조직은 시장, 부시장, 2 담당관, 3실 14과, 2소, 15동에 공무원 정원이 446명으로 정해졌어요. 그런데 인력 충원에 상당한 애로가 있었어요. 타 시군에 공문을 보내 동해시 근무 희망자를 모두 파악하고, 직급에 맞게 인사조정하고 배치했어요. 지원자가 없어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게 되자, 유은재 삼척군수를 초대 동해시장으로 내정하고, 현장에서 개청 준비를 진두지휘하도록 했어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통합 시 명칭을 정하는 게 기장 시급한 과제였어요. 명칭을 정하기 전에 먼저 통합 범위를 갖고 의견이 분분했어요. 즉, 묵호읍은 옥계면 편입을 원하고, 북평읍은 삼척읍과 합치는 걸 원했으나, 최종 묵호읍과 북평읍의 통합 안으로 확정되었다. 시 명칭제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어요. 여기서 나온 이름이 '동해시'라는 안과 '묵북시', '북묵시', '묵평시', '평묵시'라는 등 다양한 안이 있었어요. '동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지형이 동해, 남해, 서해 등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이고 한 면은 육지로 이어졌다 하여 한반도韓半島라 하잖아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동해'라는 명칭은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편찬한 '신 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동해'로 표기되어 있었지요. 시 명칭은 최종 '동해시'로 확정했죠.


한편, 1968년 삼화리에서 준공해 시멘트를 생산하는 '쌍용양회(쌍용 C&E) 동해공장' 이름 짓고 사용하고 있었지요. 사유를 알아보니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가며 수출하는 생산공장이고, 그 시발점에 대평양의 맨 동쪽에 있는 공장이란 의미'란 것도 알게 됐었죠. 여러 안 중에서 '동해시' 안이 주민공청회를 거쳐 제안되었기 때문에 당시 김정배 도지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신생시는 환동해시대의 중심도시를 목표로 출발하는 만큼, 미래 발전 지향적인 명칭인 동해시라 1980년 명명함으로써 동해시가 탄생하게 되었지요.


드디어 1980년 4월 1일, 동해시 천곡동 806 번지에 자리한 동해시 청사는 4층 중에 1층만 건축된 상태애서 객 개청식을 거행했어요. 개청식을 하기 전 김성배 도지사는 4월 1일 유은재 시장내정자를 동해시장으로 임명했다. 개청 식순에 따라 개청 테이프 절단, 동해시청 현판식, 개청식, 기념식수 등이 진행되었고,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와 축복 속에 역사적인 신생도시가 큰 걸음, 거보巨步를 내디뎠지요. 그때가 어제 같은데 어언 43년이 지났네요. 고향이 새로운 통합 시가 될 때 동해시 출신으로 미력하나마 시 개청이라는 큰 과업에 동참한 것은 나로서는 행운이었지요."

동해시청이 들어서던 당시 천곡동 모습, 사진_동해문화원 DB

2023년 현재, 동해시는 면적 180.20㎢, 행정구역 10개 동  276통 1,503반, 인구 89,426명, 43,251세대 규모로 환동해권의 산업물류의 중심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참고문헌_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이야기가 있는 동해,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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