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를 오래 전에 펜팔로 만났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던 그의 답장은 늘 성실하게 써져 있었고 재밌었기에,
난 그와 편지를 주고받는 걸 즐겨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 사는 것도 내가 일하던 대전에 살던 것도 아닌 구석진 지방에 살던 사람이어서
그를 처음 만난 뒤 다시 만나기까지는 무려 반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그를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었지만, 대신 가끔이라도 전화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
내가 그를 처음 만나고 반년 만에 다시 만난 날이었다.
사진을 같이 찍다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려고 그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가 갑자기 나를 붙잡고는 대뜸 말했다.
"넌 선택해야 해. 우리가 연인이 될지 그냥 친구가 될지."
기차역이 시끄러워서 그다음에 뭐라고 말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기억에는 그가 나에게 연인이 되지 못할 거면 친구도 못 될 거라고 협박까지 했다.
훗날에 그에게 다시 물어보니 그런 말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분명 내 귀엔 그런 식으로 들렸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도 정말 절박했다.
*
난 훗날에 그에게 왜 두 번 밖에 보지 않은 남자에게 어떤 확신이 들어 그런 고백을 했냐고 물었다.
"왜 나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하고 전화하다 이 남자하고 데이트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전화에서 뭐라고 했는데?"
"주차한 차 앞 작은 수풀에서 고양이가 부스럭 거리면서 노상방뇨한다면서 경악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