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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sh Sep 24. 2024

시간은 나아간다.

낡은 개념의 청산, 때늦은 논쟁

나의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이해는 단순하고도 복잡하다. 나는 인본주의자이고  휴머니즘을 중시하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 하면 나는 무엇인가? 좌파 우파가 의미가 없는 시대가 왔듯이 보수와 진보도 좀 더 미래적인 개념으로 정의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기존의 것을 지키려 하고 변화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선호할 때 보통은 그것을 보수라  칭한다 요즘의 문화현상을 보면 취향이라는 것이 많은 것의 선택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취향적인 기준에서 문화를 볼  때 나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미학적이고 은은한 색채와 여백적 아름다움의 미학을 추앙한다.

하지만 지난 역사에서 보수는 진보에 의해 변화되고 바뀌었으며 진보는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진보가 다시 보수가 되고 조금 더 논리적이고 보다 다수의 이해를 대변하는 새로운 보수에 의해 잠식되어 온 역사인지도 모른다, 새롭고도 인본적인 변화를 진보라고 부른다면 나는 진보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진보라고 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닐뿐더러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상황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 자체가 다소 복잡하기도 하다. 온건한 보수 온건한 진보, 극단주의적 양극 등 용어도 양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적 측면에서는 진보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는듯하다.


지난 과거에서 보수와 진보는 고정된 하나의 모습으로 보였거나 하나의 같은 방향으로만 진화한 것은 아니다.  나라와 나라마다 다르고 역사적 시기마다 다른 이름 다른 노선으로 분화되기도 하였다. 미국과 영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고려와 조선만 해도 너무나 다른 모습의 보수와 진보가 이해관계나 사상의 차이로 인해 얽히고설키는 경쟁과 협력으로 서로 공생해 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에서 낙태 허용이나 총기 규제 등의 오래 묵은 정치사회적인 이슈들에서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 복지의 의미에서는 다시 보수적인 입장이 우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 변화의 순간이나 중요한 사건들로 인해서 여러 번 겪어왔던 진보와 보수의 낯익은 대립이 비슷한 모습으로 헤게모니를 쟁취하려는 다툼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도 독자적이고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당들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온갖 사회철학들이 인도의 다양한 종교만큼이나 다양하게 양산되어 결국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싹을 띄운 온상지가 된 프랑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정치적으로 눈을 뜰 수 있는 자료로는 그런 먼 서양의 역사도 있겠지만 가깝게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가 삼국시대 아니 그 이전부터 보다 체계적인 정치체계를 갖춰가면서 정치적 라이벌의 형태로나 사회적 학문적 또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셀 수 없는 경쟁과 혁신을 통해 현재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특수한 아픈 현대사는 한민족끼리 전쟁을 치른 비극이나 일제 침략 역사에서 잉태된 사회적 문화적  변화들이 정치적 갈등과 맞물려 역동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시기 시기마다 중요한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갈등이 있었고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끼어들기도 하며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의 K문화파워가 증명하듯이 좋은 것은 어쩌면 당연히 구한말 흥선군 같은 보수 주의가 쇄국주의나 민족주의까지도 나아가면서까지 지키려 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노비제도나 과학의 발전에서 그런 보수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보수와 진보는 다양한 분야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에 서로 공생하며 미래를 위해 헉 신을 잉태하는 것이 숙명일 것이다. 보수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려 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기존의 것을 옹호하는 동안 과거의 모순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을 타파하려는 진보의 노력이 없었다면 적어도 오늘의 자유와 민주도 보장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저울의 추가 기울어지도록 하여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아주 오래된 우리의 아름다운 인본주의인 홍익인간과 의와 예를 중시하는 선구자들에게서 찾고 현재의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과 국내의 크고 작은 갈등과 변화를 바라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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