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걷다.
산책하기도 운전하기도 좋은 광활한 미쿡
조용한 소도시인 스프링필드의 거리는 고즈넉하고 걷기에 좋은 뻥뚤린 평지여서 뉴욕이나 서울같은 도시와는 다른 한적한 맛이 있다. 학교도 넓고 길도 넓고 집사이의 거리도 멀고 건물은 죄다 1층 아니면 2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뿐 아니라 지방의 도시들도 아파트와 고층건물들이 많아 외곽으로 나가지 않으면 이런 공간미를 맛보며 걷기가 쉽지 않았다. 큰 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조금은 낡은 흰색과 미색의 전원주택같은 가정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필리핀의 대학 주변 주택가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가정집처럼 생긴 건물들 사이사이 치과도 있고 변호사 사무실도 있다. 캠퍼스도 꽤 넓어서 길치인 나는 분수도 모르고 다른 이들 떼어놓고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캠퍼스안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일행중 한 분이 내게 해가 뜨는 쪽이 동쪽이고 지는 쪽이 서쪽이라며 상기시켜 주었다.
사실 공간의 여백을 살린 미학적인 아름다움으로 치면 우리나라 건축과 조경, 그림에서 빠질 수 없는 멋드러짐의 근본 요소이건만 미국의 커다란 땅덩어리 앞에서 그것을 느끼고야 만다. 심지어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안에 있는 학교를 방문했을 때 보니 그 곳조차 1층이상의 건물은 없는 뻥뚫림이라니..
좁은 땅덩어리 지키느라 한시도 평온했던 적 없는 그 땅의 주인들은 주거복지나 땅에서의 여백미를 맘껏 향유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땅에서 사이다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큰 나라들보다 유달시리 멋드러지게 높디 높은 산으로 올라가거나 삼면을 안고있는 바다쪽으로 나가야 한다.
넓직넓직 공간미가 있는시골은 말할 것도 없고 기왓집이든 초가집이든 작으나마 마당과 연못과 지붕과 처마와 하늘의 여백이 살아있던 집들에서 볼 수 있었던 우리나라의 옛 여백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에 미국에서 만난 빈 공간의 미이다.
개인주의를 미덕으로 하는 덕분에 퍼스널 디스턴스를 지키는 문화도 사람들 속에서 걸을 때 덜 번잡하게 하여 나로서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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