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팥은 다디달지.
나는 팥을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붕어빵과 국화빵, 호두과자처럼 팥이 들어간 겨울의 향이 골목마다 가득 피어오르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군침이 돌지 않는다. 붕어빵을 파는 천막 앞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며 줄을 설 때에도 나는 그냥 지나쳐버린다. 당연히 빵집에서 단팥빵을 사본 적도 없었다. 세상에는 맛있는 빵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내가 손에 단팥빵을 들고 있었다. 방금 막 사 온 단팥빵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나날이 오르는 집세를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동네로 옮기기에는 가족들의 직장과 학교가 모두 이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동네 안에서 비교적 형편에 맞는 집을 급히 찾았고, 그 과정은 몇 달이나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점점 지쳐갔다. 이사를 마칠 즈음에는 서로의 대화마저 삭막해져 있었다. 돈이라는 고작 한 글자가 우리 입에서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서로에게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이사 당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며 가구를 옮기고 집 안을 정리한 뒤에야 모든 일이 끝났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나는 동네 산책에 나섰다. 같은 동네라 해도 이전에 살던 집과는 버스로 열 정거장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 막상 이렇게 서 있으니 전혀 다른 공간에 놓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주변의 식당과 옷 가게, 카페와 문화시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단팥빵 가게 하나를 발견했다. 아주 작은 가게였다. 하얀 벽에 갈색 지붕을 얹은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아늑해 보였다. 간판에는 단정하게 ‘단팥빵’이라는 세 글자만 적혀 있었다. 전문점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게의 외관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단팥빵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내건 가게가 꼭 장인의 공간처럼 느껴져서였을까. 나는 어느새 그 안으로 들어서 있었다.
좁은 공간에는 빵들이 오목조목 진열되어 있었고, 모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달콤한 밀가루 향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열대에 놓인 빵들은 전부 팥이 들어간 것들이었다. 기본적인 단팥빵부터 모찌, 모찌 소보루, 크림이 함께 들어간 단팥빵, 무설탕 단팥빵까지 가지런히 구워져 있었다.
정말 기묘한 날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팥의 단맛은 나에게 늘 지나치게 진득한 맛이었고, 한 번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연한 갈색으로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빵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결국 나는 그중 모찌 소보루 하나를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묵묵히 기다려주던 남성은 지긋한 나이로 보였다. 자연스럽게 계산을 하는 그의 손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주름지고 뭉툭한 손가락은 결코 예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해 보였다. 저 손으로 이 빵들을 모두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계산을 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나는 비닐을 벗겨 소보루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빵의 표면은 달고나처럼 달콤하면서도 쿠키처럼 바삭했고, 그 안에서는 빵과 모찌의 쫄깃함이 잘 어우러졌다. 팥은 적당히 달고 부드러웠다. 먹는 동안 입안에 계속 침이 고였다. 왜 이렇게 팥이 맛있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루가 유난히 고단했던 탓이었을까. 그날의 빵은 유난히 달콤했다. 하나만 산 것이 아쉬울 정도로.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그 빵이 다시 떠올랐다. 팥의 단맛이 계속해서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나는 산책을 핑계 삼아 간단히 옷을 입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제의 그 빵집을 찾았다. 이번에는 종류별로 빵을 여러 개 골랐다. 어제 보았던 남성은 오늘도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며 말없이 계산을 해주었다. 참으로 편안한 풍경이었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집까지 참기 힘들었다. 나는 봉지에서 일반 모찌 단팥빵 하나를 꺼냈다. 생김새는 찹쌀떡을 닮았지만 훨씬 컸다. 비닐을 벗겨 한입 베어 무니, 모찌는 치즈처럼 짭짤하게 늘어났고 몹시 쫀득했다. 입안이 즐거워졌다. 한입 더 베어 물자 팥이 함께 들어와 단맛과 짠맛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은 각자 할 일에 빠져 있었다. 거실에는 고요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빵이 든 봉지를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이 다정한 빵들이 우리 가족에게도 다정함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달콤한 팥 맛에 취한 듯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조심스레 거실로 나가 보니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내가 사 온 빵을 먹고 있었다.
“팥 안 좋아하는 딸이 이런 걸 왜 사 왔대.”
엄마의 말이었다. 오랜만에 오간 대화였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그냥 사 왔다고 얼버무렸다.
“이 빵집 원래부터 있던 곳이잖아. 아직도 장사하네. 예전에 네 오빠가 가끔 사 오곤 했는데.”
“그래? 나는 새로 생긴 가게인 줄 알았어.”
“새로 생기긴. 우리가 이 동네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어. 원래부터 있었는데 네가 몰랐던 거지.”
그 말을 듣고 나니, 꼭 빵집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팥이 이렇게 달았었나. 아니, 팥은 원래부터 다디달지.